정치권, 합심은커녕 ‘술’ 놓고 입씨름

입력 2019-08-05 04:09

한·일 경제전쟁이 본격화된 와중에 정치권은 때아닌 ‘술 논란’에 휩싸였다. 일본의 보복 조치에 맞서 합심해야 할 때에 여야 지도층 인사들이 잇따라 신중하지 못하게 처신했고, 서로를 향한 비난에만 열을 올렸다.

이해찬(사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일본의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안보상 수출심사 우대 국가) 한국 배제 결정이 나온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한 일식집에서 술을 곁들인 오찬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이 대표가 일본 술인 ‘사케’를 마신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페이스북에서 “청와대와 민주당이 연일 반일감정을 부추겨 국민들은 가급적 일본산 맥주조차 찾지 않고 있다”며 “이 와중에 집권당 대표가 사케를 마셨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나온다”고 했다. 김정화 바른미래당 대변인도 “이율배반의 극치”라며 “일본발 악재를 총선 호재로 생각하며 백색국가 제외 직후 사케를 마시는 민주당은 사케가 넘어가는가”라고 비꼬았다.

민주당은 이 대표가 낮술을 한 건 맞지만 일본산 사케가 아니라 국내산 청주를 마신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이해식 대변인은 “우리나라 식자재로 장사하는 일식당도 가지 말라는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이 대표가 반주로 마신 것은 사케가 아니라 국산 청주인 ‘백화수복’이었다. 야당이 백화수복 한 잔에 정치공세를 하는 것은 너무 심하다”고 말했다.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도 거들었다. 조 전 수석은 “한·일 경제전쟁 중이지만 우리는 한국에 있는 일식집에 갈 수 있다”며 “전국의 일식집 업주와 종업원들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정치공세”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김현아 한국당 원내대변인은 “여당에서는 이 대표가 국산 술을 마셨다고 반박하는데 일식당이라는 상징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재반박했다.

앞서 한국당 소속 김재원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은 일본 보복 대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 심사가 한창이던 지난 1일 저녁에 비틀거릴 정도로 음주를 한 사실이 알려져 비난에 휩싸였다. 이틀 뒤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김 의원에 대해 ‘엄중 주의’ 조치를 했지만, 당 윤리위원회 회부 등 추가 징계는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지금 정치권이 ‘음주 예결위원장’ ‘사케 대표’로 으르렁거릴 때인가”라며 정쟁을 뒤로 하고 외교적 노력을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