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 조치에 강경한 대응을 예고했다. 첫 번째 행보는 국내 소재·부품·장비 업체들의 ‘자생력 강화’다. 일본에서 수입해야만 했던 소재·부품·장비를 국산화해 산업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목표다. 또 일본을 겨냥한 관광·식품·폐기물 검증체계를 강화해 ‘간접 수출규제’를 시행할 계획이다. 일본의 개정 수출무역관리령이 오는 28일 시행 예정이라 남은 3주 정도 기간에 피해를 줄이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데 총력전을 펼칠 방침이다.
다만 일부에선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방안을 세밀하게 설계하지 않으면 세계무역기구(WTO) 보조금 규정을 위배할 수 있다고 본다. 일본은 한국의 조선업 지원책을 WTO 협정 위반이라며 제소 방침을 공식화했다. 소재·부품·장비 분야에도 비슷한 지원이 이뤄지면 일본이 추가 수출규제 조치를 시행하는데 정당성을 줄 수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5일 ‘일본 수출 규제 대응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방안을 확정 발표한다. 핵심은 ‘국산화’ ‘일본 의존도 낮추기’다. 일본 수출 규제 피해의 근본 원인은 소재·부품·장비를 수입에만 의존했던 기형적 산업구조에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정부는 반도체 등 국내 주요 산업에서 사용하는 소재·부품·장비를 국산화해 내수로 지탱할 수 있도록 체질을 바꿀 계획이다.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범정부위원회를 발족하고, 2021년 일몰 예정인 ‘소재·부품 전문기업의 육성에 관한 특별법’ 대상을 소재·부품·장비 기업으로 확대한다.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업계 의견 수렴에도 나섰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4일 반도체·디스플레이·자동차 등 11개 업종별 단체 대표들과 ‘일본 수출 규제에 따른 업종별 영향 점검회의’를 가졌다. 성 장관은 “국내 공급망을 공고히 할 수 있도록 수요-공급 기업 간 다양한 협력모델을 구축하고 자금·세제·규제 완화 등 모든 지원책을 패키지로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여기에다 정부는 일본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보복 조치’도 강구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일본산 식품’을 대상으로 안전검사를 강화하는 조치다. 일본에서 들여오는 산업폐기물 심사도 깐깐하게 하고 ‘비관세 장벽’ 형태의 대응책도 검토한다.
WTO는 한국 정부의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제한 조치를 타당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 정부는 선례가 있어 일본산 식품과 산업폐기물 안전조치를 강화하더라도 국제무역 규범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홍 부총리는 “국민 안전과 관련된 관광·식품·폐기물 분야에서 필요한 대책이 있는지 세밀하게 검토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에선 ‘설익은 대책’을 내놓으면 발목 잡힐 수 있다고 우려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력하도록 정부가 직접 연결하고 자금을 투입하면 WTO 보조금 협정을 위배할 수 있다. 일본은 지난해 11월 한국의 국책금융기관이 조선·해운업체에 대출·보증·보험 등으로 공적자금을 지원해 WTO 보조금 협정을 어겼다며 WTO 분쟁해결절차에 따른 양자협의를 요청했었다.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방안도 한국 정부의 직접 지원사례로 판단해 일본이 공격 수위를 높일 수 있다. 이에 대해 성 장관은 “수요-공급 기업의 정당한 관계 안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WTO 규정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