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수출심사 우대 국가) 배제 조치에 대응해 국내 기업을 지원 사격하고 나섰다.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피해를 입은 기업들의 차입금 만기를 연장해 주고, 신규 유동성을 늘려준다. 수입 대체로를 찾는 기업에 2조원을 투입한다. 시중은행도 대출금리 인하, 대출 만기 연장 등 금융 지원책에 시동을 걸었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은 이르면 5일부터 중소·중견기업에 자금을 공급하고 대출 금리를 최대 2.0% 포인트 깎아주는 금융 지원책을 시작한다. 일본의 갑작스런 경제 보복으로 경영난에 빠진 기업들의 ‘우산’을 뺏지 않겠다는 취지다. 우리은행은 총 3조원 상당의 지원책을 마련하고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대표적 피해산업의 협력사 지원에 1조원 규모의 상생대출을 투입한다. 신한은행도 자금 운용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에 총 1조원 규모의 신규 대출을 지원한다. KB국민은행은 ‘긴급 경영안정자금’을 제공해 중소기업의 유동성 지원에 나선다.
NH농협은행은 5일부터 일본산 소재·부품 수입 기업에 할부 상환금 납입을 최대 12개월 유예한다. KEB하나은행은 피해기업을 비롯해 임직원에게도 최대 1.0% 포인트 대출금리 우대 혜택을 제공하고 수수료 감면 등을 지원할 방침이다.
또한 금융 당국은 당장 피해가 예상되는 ‘규제 품목’ 수입 기업에 대해 기존 차입금의 만기를 연장키로 했다. 지난해 1월 1일부터 규제 대상 품목을 수입·구매하거나 화이트리스트 배제 관련 피해 사실이 확인된 기업 등이 대상이다. 이들 기업에는 산업은행과 IBK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의 대출·보증의 만기가 1년간 전액 연장된다. 수출입은행은 규제 품목을 수입하려는 기업의 경우 수입자금 대출 한도를 기존 80%에서 90%까지 늘려준다. 대기업에 0.2% 포인트, 중소기업에 0.5% 포인트 대출 금리를 낮춰 준다. 한국무역보험공사는 수입보험 한도 우대, 보험료 할인 혜택을 제공키로 했다.
‘돈맥경화’가 우려되는 국내 중소·중견기업에 신규 자금도 수혈한다. 기존 특별자금·경영안정자금(2조9000억원)을 피해기업에 집중 투입하고, 새로운 자금 지원 프로그램(3조8000억원)을 만들어 제공할 방침이다.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시설 자금, 보증 지원을 강화하고 해외 기업 인수·합병(M&A)도 돕는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금융감독원, 정책금융기관, 시중은행 등과 ‘일본 수출규제 대응 간담회’를 열고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품목을 수입·구매하는 우리 기업의 자금 상환부담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대출·보증 만기 연장 등의 방안을 즉시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양민철 최지웅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