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불매운동’이 한 달을 맞았다. 지난달 초 불매운동이 움트기 시작했을 무렵 많은 이들은 ‘용두사미’를 예측했다. 일본 불매운동이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는 분석을 근거로 ‘이러다 말 것’이라고 관측한 것이다.
그리고 한달. 온갖 냉소적인 예측을 깨뜨리고 일본 불매운동은 새로운 소비자운동으로 한걸음 나아갔다. 콧대 높던 일본 기업의 사과를 이끌어 냈고, 불매운동의 주요 타깃인 일본 관광업계는 이 흐름에 대한 우려를 내놓고 있다.
지금의 자생적인 소비자운동은 무턱대고 불매를 외치는 수준을 벗어나 영리하고 설득력 있게 진행되고 있다.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소비재 중심의 불매운동이 당장 일본의 변화를 이끌어 낼 만큼 압도적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만만찮은 상대라는 것은 보여주고 있다.
일본 불매운동의 가장 큰 특징은 ‘목표’가 분명하다는 점이다. 무조건 일본 제품은 사면 안 된다는 차원을 넘어섰다. 일본 기업이나 브랜드에 대한 불매가 오히려 우리나라 기업이나 개인들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다면 과감하게 불매 목록에서 제외한다.
대신 상징적인 기업, 브랜드, 제품을 불매운동 타깃으로 삼았다. 어느 소비자단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만든 게 아니라 불매운동에 참여하는 개개인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면서 만들어진 타깃이라는 것도 지금까지의 불매운동과는 다른 양상이다.
유통업계에선 불매운동 이후 지난해 단일 의류브랜드로는 유일하게 1조3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한 유니클로의 매출이 30% 이상 떨어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실제로 1일 찾은 서울 송파구 대형 유니클로 매장은 드나드는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로 한산했다.
유니클로는 지난달 일본 본사 재무담당이사(CFO)가 ‘한국의 불매운동이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해 공분을 샀다. 이후 두 차례 공식 사과를 했지만 소비자들의 마음은 되돌리지 못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일본이 초기에 우리 불매운동을 간과한 탓에 도리어 더 큰 단결성을 이끌어 낸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수입산 맥주 부동의 1위였던 아사히 등 일본 맥주에 대한 수요도 급격히 줄었다. 편의점 GS25와 CU의 일본 맥주 매출은 40~50% 감소했고, 이마트에서는 무려 62.7%나 급감했다. 여름철 맥주 성수기를 맞아 맥주 매출이 전반적으로 상승하는 가운데 매출이 절반 이상 뚝 떨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소비자들이 일본 맥주를 외면하고 있다는 뜻이다.
유통업계가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불매운동에 동참한 것은 아니다. 거래처와의 관계, 갑을 문제 등 복잡하게 얽혀있다 보니 선뜻 불매운동에 발을 들일 수 없었다. 눈치작전을 펼치던 유통업계는 소비자들의 요구가 ‘일본 제품 불매’라는 점이 점차 분명해지면서 불매운동에 동참 쪽으로 자연스럽게 입장을 굳혀가고 있다.
불매운동의 여파가 눈에 띄게 확인되는 분야는 관광업계다. 국내 최대 여행사인 하나투어는 하루 평균 1200명가량의 일본 여행객을 유치해 왔는데 지난달 22~26일 신규 예약이 400명 수준으로 줄었다. 한여름 성수기를 맞았는데도 무려 70%나 급감한 셈이다.
일본 관광객이 크게 줄면서 저가항공사부터 시작해 대한항공까지 국내 항공사들은 일본 노선 운항을 대거 축소했다. 국내 관광업계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최근 일본 여행을 취소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호텔 숙박권 등을 저렴하게 제공하는 등의 이벤트까지 펼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1일 발표한 ‘제4차 일본제품 불매운동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 10명 중 6명 이상(64.4%)이 현재 불매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달 10일 1차 조사에서는 2명 중 1명(48.0%) 꼴이었는데 점점 참여자가 늘고 있는 추세다.
불매운동이 규모를 키워나갈 수 있었던 것은 소셜 미디어의 힘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소셜 미디어가 불매운동의 동지들이 서로를 확인하는 장(場)으로 작동하면서 불씨를 이어가게 만들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 카카오톡 등 각종 소셜 미디어나 온라인 플랫폼에 ‘인증샷’을 공유하면서 동참 여부를 알리고, 정보를 나누고, 서로를 독려했다.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세대 간 벽도 허물어졌다. 사회 참여에 적극적인 20~40대가 불매운동의 초기부터 합류했다면 10대 청소년들과 50~60대 이상 장년층까지 세대를 막론하고 불매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중학생 딸을 둔 안모(45)씨는 “딸이 어느 날 ‘유튜브를 보면서 알게 된 게 많다’며 일제 학용품을 국산으로 새로 사야 한다고 하더라”며 “아이가 대견스러워 보였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불매운동의 장기화에 따른 경제적인 득과 실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제언한다.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가 100% 일본에 타격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의 상황이 길어지면 유통 과정에 얽혀 있는 무역상사와 국내 기업, 내국인 종사자들이 겪게 될 어려움이나 속앓이도 커질 수밖에 없다.
‘강 대 강’ 대치가 길어지면 누구에게도 득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견해도 많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금의 불매운동이 매우 전략적이고 상징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서로 간의 보복은 서로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불매운동이 전략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더욱 정교하게 불매운동을 이어가야 한다는 견해도 적잖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불매운동의 대상이 ‘일본 국민’이 아니라 ‘아베 정권의 정책’이라는 목표를 더욱 분명히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설 교수는 “이 결집이 얼마만큼 지속되느냐를 보여줘야 한다”며 “타깃은 일본인, 일본 사회가 아니고 아베 정부가 취한 정책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수정 이택현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