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검찰이 중국 알루미늄 생산업체인 중왕(忠旺)그룹의 류중톈 창업자 겸 회장을 밀수와 돈세탁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류 회장 기소는 재개된 미·중 무역협상의 새로운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중국이 무역전쟁에서 시간을 끄는 장기전 태세로 돌입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1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류 회장은 2011년 중국산 알루미늄을 미국으로 수입하는 과정에서 18억 달러(2조1400억원) 규모의 탈세를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그는 그룹 대표기업인 중왕이 홍콩 증시에 상장할 때 회사 수익을 부풀리는 등의 수법으로 투자자들을 속였다고 검찰은 밝혔다. 류 회장에게는 금융사기, 돈세탁 혐의 등도 적용됐다.
미 검찰은 “이번 기소장에는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18억 달러의 관세를 미국으로부터 사취한 부패한 사업가의 부도덕하고 반경쟁적인 관행이 담겨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수억 달러어치의 허위 판매로 상장기업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부풀림으로써 전 세계 투자자들을 위험에 빠뜨렸다”며 “미국 산업과 생계, 투자에 위협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류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 법무부에 따르면 그는 24가지 혐의를 받고 있으며 최고 형량은 465년이다. 류 회장은 현재 미국에 체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류 회장에 대한 기소는 미 정부가 중국에 부과 중인 고율관세의 정당성을 부각시키고, 중국산 알루미늄과 철강 제품 등의 미국 시장 잠식을 차단하려는 의도도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류 회장은 앞서 2016년 8월 자동차 차체용 알루미늄 생산 확대를 위해 계열사 중왕USA가 알레리스를 23억3000만 달러(2조70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후 미국 내에서는 인수 반대 움직임이 거세게 일었다.
미국 의원 27명은 2017년 6월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에게 방산업체들의 민감한 기술이 중국에 유출될 수 있다며 매각을 인가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인수 실패 후 이유에 대해 중왕USA는 “미 정부의 승인을 둘러싼 불확실성 때문”이라고 밝혔다. 중왕그룹의 알레리스 인수 무산은 미 정부가 중국 기업들의 미국 기술기업 인수를 불허해온 연장선으로 해석됐다.
악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등 협상이 순조롭지 않은 상황을 감안해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30~31일 상하이에서 재개된 미·중 무역협상이 성과 없이 끝난 것은 중국이 장기전 태세로 전략을 수정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중국은 무역협상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면 미국 농민들과 소비자들의 불만이 높아져 재선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궁지에 몰리는 만큼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무역전쟁으로 성장률이 둔화되고 실업률이 높아지는 등 타격이 크지만 경기부양책과 내수 확대 등을 통해 충격을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트위터를 통해 “내가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그들이 얻는 합의가 현재 협상보다 훨씬 더 가혹하거나 아예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고 거칠게 경고한 것도 중국의 태도 변화를 감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