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란 정권의 대변인 역할을 해온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사진) 이란 외교장관을 제재 명단에 추가했다.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를 제재한 지 한 달여 만이다. 국가 간 갈등을 벌이는 와중에도 물밑에서 대화를 모색해야 할 외교 수장이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미 재무부는 31일(현지시간) 자리프 장관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자리프 장관의 미국 내 자산은 동결되고 미국인과의 거래도 금지된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자리프 장관은 이란 최고지도자의 무모한 정책을 수행했으며 이란 체제의 핵심 대변인 역할도 맡았다”며 “이란 체제의 최근 행동을 용납할 수 없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보냈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7월 이란 신정체제의 정점인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를 제재 명단에 추가한 바 있다. 자리프 장관 역시 수일 내에 제재 대상에 오를 것으로 알려졌으나 한동안 이뤄지지 않았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이란과의 갈등을 대화로 풀려면 자리프 장관을 제재해선 안 된다며 만류했다는 내용의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자리프 장관은 이란 외교 당국의 수장인 동시에 트위터를 적극 활용하며 이란 입장을 국제사회에 설파하는 역할을 함께해 왔다. 때문에 미국 관리들은 자리프 장관이 외교장관보다는 ‘선전장관(propaganda minister)’이라고 결론지은 것으로 전해졌다. 므누신 장관은 “이란 체제는 자국민의 소셜미디어 사용을 금지하고 있음에도 자리프 장관은 소셜미디어로 체제 선전과 허위 정보를 세계에 퍼뜨렸다”고 밝혔다.
대(對)이란 강경정책을 주도하는 인물로 알려진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폭스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조치는 미국이 자리프 장관을 불법 대변인으로 간주한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밝혔다.
자리프 장관은 트위터로 맞대응했다. 자리프 장관은 “미국은 내가 ‘핵심 대변인’ 역할을 한다는 이유로 제재 대상에 올렸는데 그게 그렇게 고통스러운 진실이었느냐”며 “제재는 나와 가족에게 아무런 효력을 미치지 못한다. 나는 이란 외부에 아무런 자산도, 이해관계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를 미국의 그토록 큰 위협이라고 간주해준 데 대해 감사하다”고 비꼬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을 강하게 압박하는 동시에 대화의 문을 열어두는 양면 전술을 취해 왔다. 하지만 이란은 미국이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탈퇴를 철회하고 경제제재를 해제하기 전까지는 대화에 응하지 않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여전히 이란과의 대화에 나설 의향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미국이 외교 수장인 자리프 장관을 제재함으로써 이란과의 긴장 완화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자리프 장관과 오랜 친분이 있는 다이앤 파인스타인 민주당 상원의원은 “나는 자리프 장관을 15년 넘게 알고 지내왔다”며 “의견 차이는 있었어도 자리프 장관은 언제나 유능한 외교관이었다”고 밝혔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