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 세포의 내부물질을 교란해 암세포 스스로 사멸하도록 유도하는 기술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생명화학공학과 김유천 교수 공동 연구팀이 세포의 이온을 교란하는 원리로 암세포의 자가사멸을 유도하는 항암제를 개발했다고 1일 밝혔다.
세포 안팎에는 ‘이온 기울기’가 형성돼 있다. 일반적으로 세포 바깥에는 나트륨(Sodium)과 염화물(Chloride)의 농도가 높고, 세포의 안쪽은 칼륨(Potassium)의 농도가 높다. 이온 기울기는 세포의 성장과 대사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를 교란하면 세포의 자가사멸(Apoptosis)을 촉진할 수 있다.
하지만 기존의 항상성 교란 물질은 물과 화합하지 않는 성질 때문에 동물실험에 적용하기 어려웠고, 항상성이 교란된 세포가 왜 스스로 사멸하는지에 대한 원리 역시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물에 잘 녹으며 칼륨 이온을 운반할 수 있는 항암물질을 개발했다. ‘펩타이드’(2개 이상의 아미노산이 고리모양으로 결합된 화합물)의 양 끝에 양이온성을 갖고 물에 잘 녹는 그룹, 칼륨 이온 운반이 가능한 그룹을 각각 결합해 두 가지 성격을 모두 갖도록 한 것이다.
이 같은 특징을 바탕으로 해당 물질은 세포 내 칼륨 농도를 낮추는 동시에 칼슘 농도를 증가시킨다. 증가한 칼슘 농도는 세포 내 활성산소를 크게 높이며 소포체에 스트레스를 일으켜 최종적으로 세포의 자가사멸을 유도한다.
실제로 연구팀이 종양을 이식한 실험용 동물 모델에 이 항암물질을 투여하자 높은 항암 효과와 함께 세포의 자가사멸 신호를 확인했다. 특히 물에 대한 용해성이 좋아 임상 적용 가능성이 높고, 새로운 원리를 바탕으로 항암 효과가 발생하는 만큼 보다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연구를 주도한 KAIST 생명화학공학과 이대용 박사는 “이온 교란 펩타이드는 세포 내의 활성산소 농도를 크게 높여 세포 자가사멸을 유도한다”며 “기존의 항암 치료보다 더 효과적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KAIST 이대용 박사와 한양대 생명공학과 이수환 박사과정 대학원생이 공동 1저자로 참여하고 한양대 생명공학과 윤채옥 교수가 공동 교신저자로 참여한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사이언스(Advanced Science)’ 7월 17일자 표지논문(Back cover)으로 게재됐다.
대전=전희진 기자 heej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