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 가면 한국인 일본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날 사람들입니다. 한·일 갈등이 첨예한 가운데 작은 오케스트라를 통해 천국에서 실현될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 같아 기쁩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이충규(교토 이즈미교회) 선교사의 목소리엔 감격이 느껴졌다. 그는 지난 25일 교토시 야마시나구 동부문화센터에서 열린 국제음악회 현장을 “하나님이 계획하신 미래의 한·일 관계를 볼 수 있었던 무대였다”고 표현했다.
이날 무대에선 한국에서 온 신용산교회(오원석 목사) 사랑꿈틀오케스트라와 일본 피아니스트 히데오 고보리가 협연을 펼쳤다. 주제는 ‘국경을 뛰어넘는 사랑과 우정의 아름다운 선율’. 1시간 넘게 진행된 음악회에선 바하의 칸타타, 브람스의 헝가리무곡 등 귀에 익은 클래식부터 일본 애니메이션 OST 연주와 에델바이스 합창, 일본어 찬양 등 관객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곡들이 공연됐다.
이 선교사는 “교토 야마시나 지역은 평소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기 힘든 문화 소외지역이라 관객들에게 매우 뜻깊은 시간이었을 것”이라며 “공연을 마치고도 수차례 ‘앙코르’가 요청됐다. 히데오가 한국인 지휘자와 손을 잡은 채 감사 인사를 할 땐 눈물을 흘리는 관객도 보였다”고 전했다.
공연을 앞두고 폭우가 쏟아져 관람객이 30~40명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했던 이 선교사는 예상의 3배가 훌쩍 넘는 사람들이 객석을 채운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관람객의 90%가 일본인이었고 그중 기독교인은 이즈미교회 성도 10명이 전부였다. 국민일보를 통해 음악회 소식을 접한 홍덕표(재일선교사연합회장 고베은혜교회) 선교사는 차로 2시간을 달려 현장을 찾았다.
홍 선교사는 “한·일 관계가 반목과 질시, 적대의 상황에 놓여있는 시기에 한국 성도들이 먼 길을 찾아와 주님의 사랑으로 일본 시민을 격려해 줘 큰 감동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 선교사는 “일본 언론에 한국인의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연일 자극적으로 보도돼 혐한 감정을 갖게 된 시민도 적지 않다”며 “비록 소수에 불과하지만 문화적 섬김과 교류를 통해 양국 국민들부터 편견을 해소한다면 정치권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작은 기적을 경험한 건 일본을 찾아간 한국 성도들도 마찬가지였다. 불매운동 확산의 여파로 ‘일본행’ 자체가 비난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없지 않았다. 오원석 목사는 “연초부터 준비했던 일본 비전트립이 예상치 못한 외교적 갈등으로 취소될 수도 있었지만 ‘놀러 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러 가는 것’이란 목적의식이 결단의 원동력이 됐다”고 설명했다.
미션과 애국,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했던 단원들은 이전 비전트립 때와는 다른 여정으로 3박4일을 채웠다. 끼니는 현지 식당을 이용하는 대신 도시락으로 대체했고 공연 후엔 관광지 대신 지역 내 기독교 유적지를 찾아갔다. 오 목사는 “무엇보다 큰 소득은 비전트립에 참가한 다음세대 단원들이 긍휼이 무엇인지 마음에 새겼다는 점”이라며 다음과 같이 기대를 표했다.
“공연장엔 거리전도를 통해 찾아온 10여명의 일본 어린이도 있었습니다. 외교적 갈등을 넘어 공연장에서만큼은 양국의 다음세대들이 사랑과 섬김이 무엇인지 느꼈을 겁니다. 그 아이들이 기성세대가 됐을 때 이날을 기억한다면 지금 같은 갈등 상황을 더 지혜롭게 풀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