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에서-라동철] 토착 왜구와 친일 청산

입력 2019-08-03 04:01

정치권과 SNS 등에서 ‘토착 왜구’란 말이 회자되고 있다.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자생적 친일파들을 비꼬듯 지칭하는 비어다. 일제의 국권침탈과 식민지배에 협력하고 사익을 챙겼던 고위 관료, 지식, 모리배 등을 가리켰던 토왜(土倭)를 현대식으로 풀어쓴 말이라고 한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지난 3월 중순 반민족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로 인해 국민이 분열됐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후 토착 왜구가 아니냐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반민특위는 일제의 식민 지배에 협력한 친일파를 처벌하기 위해 정부수립 직후인 1948년 10월 구성됐지만 이승만 정권과 친일 세력의 방해로 1년도 못 돼 막을 내렸다. 제1야당 원내대표가 친일 청산 작업을 분열 행위로 폄훼할 정도로 역사인식이 저열하다는 게 놀랍지만 그렇다고 곧장 토착 왜구란 낙인을 찍어 공격하는 건 지나쳤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을 문제 삼아 일본이 경제 보복 조치를 취한 후에는 대상이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외면하는 사람들에게까지 무분별하게 확산되고 있는 것도 우려스럽다.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반성하기는커녕 인정도하지 않으면서 전쟁할 수 있는 국가를 꾀하는 아베 신조 총리 등 일본 극우 정치인들을 비난하는 건 온당하지만 일본 자체를 배척하는 것은 엉뚱한 과녁을 겨냥하는 꼴이다. 일본에도 아베 정권의 부당한 처사를 비판하는 양심 세력들이 있다. 대다수는 극우 세력과 거리를 둔 평범한 시민들이다. 일본에 여행을 가고, 일본 음식과 문화·제품을 즐기는 사람들까지 싸잡아 토착 왜구란 딱지를 붙이는 것은 독선이고 폭력이다. 자연발생적으로 터져 나온 일본 제품 불매운동도 나름 의미가 있지만 친일파 청산에 실패한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진정한 극일(克日)의 시작이 아닐는지.

일제 잔재를 말끔히 털어내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안타까운 일이다. 조선총독부 자문기관인 중추원과 행정기관 등에서 식민 지배에 적극 협력한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광복 후 우리 사회의 지배층으로 옮겨 앉았다. 독립군 토벌에 앞장섰던 일본군 장교 출신들이 국군 장성, 고위 관료로 변신했고 죽어서는 국립현충원에 묻혔다. 독립운동가를 체포하고 고문했던 일본 순사 출신들이 광복 후에도 경찰에 남아 사회주의권 출신 독립운동가를 탄압하고 고문한 사실은 친일 청산 좌절의 역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선열들이 알면 통탄할 일이다.

친일파 1세대들이 대부분 세상을 떠났고, 오랜 시간이 흘러 친일 여부를 가릴 증언이나 자료를 구하기도 쉽지 않을 게다. 이제 와서 친일 청산을 얘기하는 게 부질없다는 지적도 있다. 정말 그럴까.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는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은 어리석은 짓이다”고 말했다. 물리적 단죄까지는 아니더라도 잘못된 역사적 평가를 바로잡는 걸 포기해선 안 되는 이유다.

라동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