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의원들이 31일 일본의 수출 규제를 둘러싼 한·일 갈등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데 인식을 함께했다. 다만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수출심사 우대 국가) 배제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해선 입장차를 드러냈다.
국회 한일의회외교포럼 회장인 무소속 서청원 의원을 단장으로 하는 방일단 10명은 이날 오전 도쿄에 도착해 본격적인 외교전에 돌입했다. 이들은 첫 번째 일정으로 자민당 소속의 누카가 후쿠시로 일한의원연맹 회장을 비롯한 일본 의원 10명과 오찬 간담회를 진행했다.
서 의원은 약 1시간50분 동안 진행된 간담회 뒤 기자들과 만나 “현안이 엄중한 가운데 양국이 이렇게 계속 나가면 국가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인식을 같이했다”며 “이렇게 가선 안 된다는 것은 똑같이 공감했다”고 설명했다. 오찬 분위기는 과거에 양국 의원들이 만났을 때와 다름없이 화기애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방일단은 국내의 반일 분위기를 전하며 2일 화이트리스트가 발효되지 않도록 일본 의회가 노력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서 의원은 “양국은 마주치는 열차와 같은 상황인데 어려울 때마다 고비에서 의원들이 윤활유와 가교 역할을 해온 점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화이트리스트 제외가 부당한지 여부를 두고 한·일 의원이 이견을 보이기도 했다. 누카가 회장은 방일단이 화이트리스트 제외가 부당하다고 지적하자 일본 경제산업성 통계를 제시하며 일본의 수출 규제는 부당한 조치가 아니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화이트리스트 배제는) 수출 금지가 아니라 지금까지 심사 없이 수출되던 것을 제대로 개별 심사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누카가 회장은 서 의원과 추가 면담한 뒤 기자들과 만나 “양국 간 긴밀한 연계 플레이가 되지 않는 점이 있어 서로 의견 교환이 투명하게 돼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아베 신조 총리와 문재인 대통령이 김대중·오부치 결단의 정신을 배워 제대로 된 양국 관계를 쌓아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방일단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유지를 위해서도 화이트리스트 제외는 안 된다는 점을 역설했다. 원유철 의원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면 GSOMIA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할 수 없으니, 한·일 안보협력을 위해 화이트리스트 제외는 절대 안 된다고 했고 일본 측이 경청했다”고 전했다.
일제 강제징용 문제도 언급됐다. 누카가 회장이 ‘과거 노무현·김대중 정권 때에도 (강제징용과 관련해) 법적 문제가 없었는데 문재인 정권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이 문제가 깔끔히 정리돼야 한다’는 취지의 언급을 한 것이다.
한일의원연맹 차원에서 1일에 공동선언문 성격의 합의문을 발표할 가능성도 있다. 서 의원은 이에 대해 “성명이 나오면 양국이 지정학적, 정치·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잘 견뎌왔는데 이렇게 가서는 도움이 안 된다는 인식을 같이했다는 내용이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방일단은 이후 일본 공동여당인 공명당 당사를 찾아 야마구치 나쓰오 대표와 간담회를 갖고 한·일 관계 회복을 강조했다. 이에 야마구치 대표는 “한·일 교류를 더욱 확대하고 심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양국 간 관계가 안정되고 조속히 발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이날 예정돼 있던 자민당 지도부와의 면담은 자민당 측 요청으로 회동 30분 전에 1일 오전으로 연기됐다. 당내 2인자인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과의 면담이 성사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