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화이트리스트 배제 제동… 한·일 ‘분쟁중지협정’ 촉구

입력 2019-08-01 04:02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31일 태국 방콕의 한 호텔에서 한·미얀마 외교장관회담을 준비하고 있다. 오른쪽은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방콕의 숙소에 도착한 모습. 강 장관과 고노 외무상은 1일 오전에 만나 양국 갈등 사태에 관해 논의한다. 연합뉴스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 규제 이후 한·일 갈등을 관망해오던 미국이 적극적인 중재에 나섰다. 미국은 한·일 양국에 일정 기간 분쟁을 중지하는 ‘분쟁중지협정(standstill agreement)’을 촉구했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수출심사 우대 국가) 한국 배제 방침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로이터통신은 30일(현지시간) 미 고위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미국이 한·일 양국에 추가 조치 없이 현 상태를 유지한 채 협상토록 하는 협정에 서명토록 촉구했다고 전했다. 미국이 일본에는 ‘화이트리스트 한국 배제 금지’를, 한국에는 ‘한국 내 일본 기업 자산 현금화 중단’을 요청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31일 “트럼프 정부가 아베 신조 정부에 화이트리스트 한국 제외 각의(국무회의) 결정을 하지 않도록 요구했다”는 미국 정부 관계자의 발언을 전했다. 이 관계자는 “한국에 대해선 대법원 징용배상 판결과 관련해 원고가 압류한 한국 내 일본 기업의 자산을 현금화하는 것을 멈출 것을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일본 교도통신도 ‘일·한 대립, 미국이 화이트국가 제외 연기 촉구’라는 기사를 통해 “사실상 일본에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시키는 절차를 연기하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에 화답하듯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차 태국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강경화 외교장관을 만나고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을 만날 것”이라며 “또 두 사람을 함께 만나 그들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도록 장려하겠다”고 말했다.

미국의 적극적 중재 행보는 한·일 양국의 갈등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등으로 더 확대되는 상황을 우려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폼페이오 장관도 “그들은 모두 북한을 비핵화하려는 노력으로 우리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며 “두 나라를 위해 도울 수 있다면 그건 미국에도 중요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로이터통신도 “미국은 8월 24일 지소미아 신고기한을 앞두고 분쟁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르면 2일쯤으로 예정됐던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한국 제외가 임박한 시점에서 한·일 외교장관회담도 열린다. 외교부는 “강 장관이 ARF 등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담 참석을 계기로 1일 오전 고노 외무상과 회담을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방콕에 도착한 강 장관은 고노 외무상과의 회담에 대해 “우리 입장을 강하게 개진하면서도 양국 관계가 파국 상태가 돼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얘기를 나눠 보겠다”고 말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긴급 상임위원회 회의에서도 일본 문제가 논의됐다. 청와대는 “우리의 노력에도 일본이 조치를 철회하지 않으며 상황을 악화시켜 나갈 경우 우리 정부는 가능한 모든 조치를 포함해 단호히 대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이날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화이트리스트 한국 제외 조치와 관련, “방침에 변화는 없으며 절차를 진행해 갈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다만 스가 장관은 “1일 예정된 한·일 외교장관회담의 장을 포함해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양국 간 현안에 대해 제대로 논의를 거듭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덧붙여 여지를 남겨뒀다.

권중혁 기자, 방콕=최승욱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