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으로 북 위협 맞서자”… 한국당, 안보 주도권 선점 노린다

입력 2019-08-01 04:05
나경원(왼쪽)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31일 국회에서 북한 미사일 발사 관련 연석회의를 열고 있다. 나 원내대표는 “북한은 이미 3차례 도발함으로써 삼진 아웃됐다. 9·19 남북 군사합의를 파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지훈 기자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안보 위협에 핵무기로 맞서자는 주장이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나경원 원내대표가 청와대를 향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식 핵공유’를 검토해야 한다고 요구한 데 이어 ‘핵 잠수함 배치’, ‘자체 핵무기 개발’ 등의 주장들이 소속 의원들 사이에서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전통적으로 남북 경색 국면이 보수 지지층에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한 만큼 대치 국면을 부각해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친일 프레임에 빼앗긴 외교·안보 이슈 주도권을 북한발 안보 위협으로 반전시켜보겠다는 계산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나 원내대표는 31일 북한 미사일 발사 관련 연석회의를 열고 “북한이 발사했다는 미상 발사체는 이스칸데르급 탄도미사일일 가능성이 높다”며 “해당 미사일이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만큼, 핵 억지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청와대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열어 일각에서 논의되고 있는 나토식 핵공유를 비롯해 핵 억지력 강화를 위한 적극적인 검토를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조경태 최고위원도 나토식 핵공유 모델을 언급하며 “전술핵 배치는 전쟁을 위한 것이 아니라 평화를 위한 것이다. 모든 외교적 역량을 투입해서라도 전술핵 재배치를 이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진석 의원도 “북한의 핵무장에 맞서 한·미·일 3국이 공동관리하는 핵 잠수함 체제를 가동해야 한다”고 했고,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윤상현 의원은 페이스북 글을 통해 “토마호크 등의 핵미사일이 탑재된 잠수함을 한반도 영해 바깥 수역에 상시적으로 배치해야 한다. 미국과 핵공유 협정을 맺으면 금상첨화일 것”이라고 말했다. 각론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미국의 핵전력을 이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온 셈이다.

한국당 지도부는 전술핵 재배치 주장이 국제사회의 비핵화 흐름에 배치된다는 여권의 비판을 의식한 듯 “핵무장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나 원내대표는 “한국형 핵공유 모델은 핵확산금지조약(NPT)과 모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핵무장을 이야기하는 것과 결이 다르다”고 해명했다. 다만 조 최고위원은 “미국과 전술핵 공유가 되지 않는다면 자체 핵 개발을 추진해야 한다”며 다른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홍준표 전 대표가 19대 대선에서 전술핵 재배치를 공약으로 내놓은 이래 잦아들었던 핵무장 카드가 다시 부상하게 된 것은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실험과 맞닿아 있다. 문재인정부 들어 평화 무드에 접어들었던 남북 관계에 틈이 벌어지면서 강대강 대결 구도를 형성해 국면을 전환하겠다는 포석이다. 주로 보수 진영에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외교·안보 이슈는 최근 일본의 무역 보복에 따른 친일 프레임으로 한국당에 불리하게 작용해 왔다. 한국당에는 연이은 북한의 도발이 프레임을 바꿀 수 있는 터닝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

북한의 갑작스러운 미사일 실험으로 이날 예정됐던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는 취소됐다. 여야는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국가안보실 등으로부터 보고를 받을 예정이었지만 나 원내대표가 위기상황인 만큼 일정을 연기하자고 제안하면서 회의가 열리지 않았다. 여야는 다음 달 7일 운영위 회의를 열기로 했다.

심우삼 기자 s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