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업계를 둘러싼 대외적 위기감이 고조되자 김준(사진) SK이노베이션 사장이 업체 간 협력 강화를 제안하고 나섰다. 중국은 국내 업체를 추격하고, 일본이 소재 수출을 규제하는 위기 상황에서 우리 업계가 시장을 지키기 위해 출혈 경쟁은 피하자는 의미로 해석된다.
31일 SK이노베이션에 따르면 지난 29일 김준 총괄사장은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노사 단체협약 갱신 조인식을 가지면서 “업계가 힘을 모아야 할 시점인데 이런 모습을 보여 국민들께 죄송하다”며 “열심히 노력해도 부족할 판에 이런 상황이 되어 매우 안타까운 심정이다”고 밝혔다.
김 사장이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LG화학과 치르고 있는 소송전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지난 4월 LG화학은 미 국제무역위원회(ITC)에 배터리, 부품 등 제조공정의 영업 비밀을 침해 당했다고 SK이노베이션을 제소했다. SK이노베이션도 지난달 LG화학을 상대로 명예훼손 손해배상 및 채무부존재 확인 청구 소송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기했다.
김 사장은 지난 5월 기자간담회에서도 LG화학과 소송에 대한 질문에 “안타깝다”고 표현했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한국이 우위를 차지하려면 업체 간 힘을 모아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데 소송은 도리어 경쟁력을 깎아먹는다는 것이다. SK이노베이션 측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함께 노력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일본의 무역규제가 반도체에 이어 배터리 사업을 정조준 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업계의 공조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해진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이 기초 소재 연구·개발(R&D)에 협심해 국산화를 하거나 소재 생산능력을 가진 중소기업을 함께 키워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중국은 국내 업계의 갈등을 틈타 위협을 가하고 있다. 중국 배터리업체 CATL은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싸우는 틈을 타 이들의 핵심 R&D 인력에 2~3배 많은 연봉을 제시하며 채용에 나섰다. 전기차 시장이 빠르게 확장되고 있는 중국에선 배터리 수요가 크다. 게다가 2021년부터는 중국 정부의 전기차 배터리 보조금 지급이 끊기면서 가격경쟁력이 아닌 품질로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고급 인력 확보에 나선 것이다.
다만 일각에선 기술 유출과 대외적 위험은 별개의 문제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 유출은 산업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이기 때문에 글로벌 기업들도 소송전을 불사하곤 한다”며 “공조가 필요할 땐 힘을 합치면 되고, 둘은 별개로 봐야 한다”고 전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