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정체성 고민하며 사는 입양인 위해 제작”

입력 2019-07-31 20:00 수정 2019-07-31 22:06

글렌 모리(60·사진)씨의 어린 시절은 괴로웠다. 미국 콜로라도주 백인 대가족에 입양된 그와 그의 남동생은 마을에서 유일한 아시아인이었다. 학교에서도 아시아인은 그 혼자였다. 거울을 볼 때마다 자신이 한국에서 왔다는 걸 알 수 있었지만 그 사실이 너무나 싫었다. 사회에 나아가 직장을 갖고, 직장에서 아내를 만나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서도 그는 스스로가 한국인이라는 걸 생각하기도, 말하기도 꺼렸다. 그러다 마흔을 넘긴 어느 날 문득 그는 마음을 바꿔 먹기로 했다. 스스로가 누군지를 싫어하며 늙어가는 건 너무나 슬픈 일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모리씨는 7개 국가 16개 도시에서 6개 언어를 쓰는 한인입양아 100인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사이드 바이 사이드’(Side by Side·곁에 나란히)를 아내 줄리와 공동감독했다. 부부가 TV광고업계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만든 이 영화는 지난해 10월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사회정의(Social Justice) 영화제에서 단편 다큐 부문 금상을 수상했다. 한국에서는 세계한인입양인협회(IKAA)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주최 중인 창립 15주년 맞이 회합 전시관에서 31일부터 상영 중이다.

모리씨는 스스로의 이름을 내건 광고업체를 운영할 정도로 성공한 광고제작자다. 2012년 광고업계에서 아내와 함께 은퇴한 뒤 줄곧 이 작업에 매달렸다. 평생 정체성을 고민하며 고립된 채 살아가는 세계 도처의 한인입양인을 위해서였다. 모리씨는 “전 세계의 한인입양인 19만8000명 중 고국을 한 번이라도 방문할 수 있는 건 수천명에 불과하다”면서 “다른 환경에서 각자의 삶을 살고 있지만 동시에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이들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에게는 인터넷 홈페이지(sidebysideproject.com)에서 작품을 본 수많은 한인입양인들이 이메일과 편지를 보내온다. 자신들도 ‘한인입양인’이라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응원받고 있다는 걸 깨닫고 기뻐하는 메시지다. 그는 “인간에게는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자랄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한국 사회가 아이들을 낯선 곳으로 보내기보다 한국 사회에서 입양되거나 지원을 받아 자랄 수 있도록 도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IKAA 회합 개회식에는 세계 한인입양인과 그 가족 700여명이 모였다. 영국 TV프로그램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 출연했던 재영교포 전자바이올리니스트 수지 송이 축하공연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축사에서 “입양 재외동포와 가족의 삶을 응원한다. 한민족이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여러분이 자랑스러워하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