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함과 소탈함이 매력인 배우 유해진(49)의 새로운 모습이다. 영화 ‘봉오동 전투’(감독 원신연) 속 그는 강렬하기 그지없다. 서글서글한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단단한 카리스마. 내 나라를 지키겠다는, 내 사람들을 살리겠다는 의지가 꽉 들어차 있다.
“제가 원래 카리스마는 좀 있었어요, 하하. 그런데 이 역할은 제가 아닌 다른 배우가 했어도 카리스마 있게 그려졌을 거예요. 워낙 투박하면서도 날이 선 인물이니까요. 최근 작품들에서 말랑말랑한 찰흙 같은 역할을 많이 선보였는데, 이번엔 그야말로 딱딱한 돌멩이 같은 느낌이죠.”
‘봉오동 전투’에서 독립군 황해철 역을 소화한 유해진을 31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시나리오를 읽고 육체적인 면에서 내가 이 작품을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들었지만, 지금 아니면 언제 해보겠냐는 생각에 도전했다”고 말했다.
오는 7일 개봉하는 영화는 독립군 연합부대가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첫 대규모 승리를 쟁취한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를 처음으로 스크린에 옮긴 작품이다. 역사책에 기록된 영웅이 아니라, 이름 모를 독립군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항일대도’가 주무기인 황해철은 친동생처럼 아끼는 분대장 이장하(류준열), 오른팔 마병구(조우진) 등과 일본군을 봉오동까지 유인해 싸운다. 적을 향해 칼을 휘두를 땐 가차 없지만 동료들과 함께일 땐 인간미가 넘친다. “조심스럽게 연기를 했죠.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도록.”
전투 상황을 실감 나게 재현하려다 보니 촬영은 대부분 험준한 지형에서 진행됐다. 달리는 장면이 특히 많았는데, 평소 운동을 즐기는 유해진에겐 큰 어려움이 없었다. 가장 체력이 좋았던 이가 누구냐는 물음에 그는 “매번 뒤를 확인하며 뛰었다. 다른 사람들과 차이가 날까봐”라며 웃었다.
역사에 대해 잘 아는 편은 아니라는 유해진은 “작품을 통해 배우는 게 많았다”고 했다. “독립군들이 정말 힘들었겠구나, 절실히 느꼈어요. 극 중 표현이 잔인하다는 반응도 있는데, 실제로는 그보다 더한 일이 있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반일 감정이 심화되고 있는 사회 분위기가 이 영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다만 유해진은 “영화는 영화 자체의 힘으로 굴러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답답한 시국에, 승리의 역사를 다룬 우리 영화를 보고 통쾌함을 느끼신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전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