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망가질 정도로 전도와 봉사에 모든 삶을 드리는 어머니를 보며 신앙생활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것이고, 하나님은 모든 것을 요구하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나는 하나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주일학교 교사와 성가대원으로 열심히 봉사했다. 중3 때 어느 대학생의 “예수님 믿으세요? 구원의 확신이 있으세요?”라는 질문에 ‘열심히 다니는데요’라며 엉뚱한 답변을 한 후 ‘내가 구원받은 것이 맞나?’ 하며 고민에 빠졌다. 기도도 하고 목사님도 만났지만 명쾌한 답을 얻지 못했다. 그러다 결혼하고 가장이 되면서 성악가의 꿈을 접고 직장에 도전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속 타는 나날을 보냈다.
어느 날 ‘당신은 하나님을 믿는데 왜 기도로 문제를 해결 받으려고 하지 않느냐’는 아내의 말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아내의 간절한 권유에 ‘그래 어차피 백수인데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고민해보자’는 생각으로 한마음교회에 따라가 형님 한 분을 만났다. 그동안 많은 교회를 다녔지만 너무 쉽고 명쾌하고 확신 있게 말씀을 풀어주는데 입이 딱 벌어졌다. 그런데 참 특이하게 매번 같은 말씀을 하셨다. ‘이 세상이 어둠인 것만 정확히 알아도 많은 것이 풀린다. 하나님이 이 땅에 직접 오시지 않았다면 아무리 발버둥 쳐도 하나님을 알 수 없다’며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분을 하나님으로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증거는 부활’임을 강조했다. 말씀을 들을수록 하나님이 살아계심이 선명해졌지만 마음에 주인으로 모시는 것은 계속 고민이 되었다. 어머니와 예수님 제자들의 삶을 보며 나는 그렇게 살 수도,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은 마음이 늘 있었다.
반년이 지나 결단을 하고 “형님, 하나님이 살아계심이 확실하니 나도 제자들처럼 힘들더라도 그 길을 가볼게요.” 그러자 형님은 의외로 “아니지, 그 사람들은 너무나 기뻐서 그 길을 간 거야.” “예? 기뻐서 그 길을 갔다고요?” ‘모든 것을 다 드리는 삶이 어떻게 기쁘지?’ 다시 혼란이 왔다. 다시 엎드리며 요한복음을 읽는데 21장에서 내 생각과 전혀 다르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물음 앞에 딱 마주 섰다. 순간 하나님에 대한 모든 오해가 한순간에 풀렸다. 예수님이 우리 주인이 되시기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내 것을 취하기 위함이 아니라 단 하나, 내 마음 중심에서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를 듣기 원하신 것임을 알게 됐다.
처음 창조하셨을 때의 사랑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싶으신 마음이 부어지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드디어 ‘하나님! 저도 하나님을 사랑합니다’는 회개와 감사의 고백을 했다. 그때부터 나는 미친 듯이 복음을 전했다. 지하철에서 부활을 외치다 공공장소에서 소란을 피웠다고 경찰에게 붙잡혀 육하원칙에 따라 진술서를 썼다. ‘김정일이, 2002년 0월 0일, 지하철 몇 호선 몇 번 칸에서, 예수님의 부활과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해서, 큰 소리로 기쁘게 소리쳤습니다.’ 진술서를 쓰는 내 마음은 너무 기뻤다.
친구 딸 돌잔치에 가서 ‘나는 예수님을 너무 사랑한다. 예수님 없이는 못 살겠다’며 주저리주저리 복음을 전했는데 친구는 자신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았다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 친구는 지금 나보다 더 뜨겁다. 또 중·고등학생 5명을 만나 모임을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전임사역자가 2명이 나왔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소년원에 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얼마 전 ‘선생님 제가 조금만 더 일찍 선생님을 만났다면 이곳에 오지 않았을 거예요. 이곳을 나가면 저도 선생님처럼 복음을 전하며 살게요’라는 편지를 받았다.
지금 나는 교회 찬양 사역자로 섬기고 있다. 바울의 고백처럼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달려갈 것이다.
김정일 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