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둥이 막내딸로 조부모와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초등학교 때 잠깐 미국에서 살다 온 나는 공부와 발표에 남달리 뛰어나 학교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모든 선생님이 예뻐해 주니 더욱 관심에 대한 욕심이 생겼고, 시간이 흐르며 다른 사람을 밟으면서까지 사랑받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대학 때 교수들에게도 인정을 받으니 한껏 기고만장해져 내 목표에 방해가 되는 주변 사람들을 거침없이 누르고 짓밟으며 살았다.
사촌 언니를 따라서 간 한마음교회에서도 내 모습은 마찬가지였다. 목사님과 성도들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 설교 말씀에 집중하며 간증 기록도 열심히 했다. 같이 훈련받는 언니, 동생들도 모두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었고 하나님 말씀의 감격보다 내 신앙이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에 초점이 가 있었다. 이렇게 비뚤어진 나의 신앙생활은 말씀에만 집중하는 자매들과 점점 차이가 났고, 그것은 결국 내게 큰 고민으로 다가왔다.
어느 예배 때 양과 염소에 관한 비유 말씀을 들었다. 염소가 양이 될 수 없듯이, 교회에 같이 다녀도 근본이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며 ‘내가 어쩌면 양으로 착각하고 있는 염소일 수도 있겠다’는 것이 비쳤다. 그런데 이것은 삶의 모습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천국과 지옥의 차이라는 것을 알게 되며 갑자기 앞이 캄캄해졌다. 그러다 마태복음 10장의 ‘부활의 증인은 순교자’라는 목사님의 말씀을 들은 후 어느 언니와 교제를 했다. 언니는 제자들이 본 것을 동일하게 봐야 한다며 내게 질문을 했다. “우혜야, 네가 어떤 사건을 목격했어. 그런데 그것을 말하면 죽인다고 할 때 너는 그 사실을 말할 수 있겠니?” 그 순간 예수님 제자들의 삶이 보였다. 직접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않고, 거짓말로 예수님을 보았다며 죽을 수는 절대 없음을 그대로 알게 됐다. ‘아! 제자들은 정말 부활을 봤구나!’ 한순간에 탄성이 나왔다.
언니는 ‘제자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믿을 수 있었겠니?’ 하며 두 번째 질문을 했다. 그동안 ‘부활하셨으니까 믿었겠지.’ 하며 별 생각 없이 여겼는데 이 질문을 받고 다시 기도하며 성경에 집중했다. 3년을 함께 생활하면서 엄청난 기적과 능력을 보았지만 결국 예수님이 하나님임을 고백한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을 보고 난 후였다.
그제야 내 눈이 확 열렸다.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예언대로 성취된 부활의 표적을 통해서 이분을 정확히 믿을 수 있는 것이었다. ‘우혜야, 내가 너의 주인이 되기 위해 죽고 부활했다. 이제는 너의 의심을 내려놓고 나를 주인으로 믿어주겠니?’ 예수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며 하나님을 밀치고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발버둥 친 내 삶이 비쳤다. 살아계신 예수님 앞에 서니 이분을 믿지 않았던 엄청난 죄를 알게 돼 바로 엎드려 회개하고 주님께 굴복했다.
예수님을 만나니 내가 진짜 염소였다. 몸이 교회에 있다고 염소가 양이 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포도나무와 가지처럼 완전한 하나로 연합시켜 주신 이분의 사랑 앞에 밀려오는 감격을 주체할 수 없었다. 영혼들을 사랑하는 것이 결국 나 자신과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다니는 이 학교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사명지임을 알게 되며 즉시 선후배들과 날짜를 정해 교수님들, 학생들, 경비아저씨, 청소부 아주머니 할 것 없이 캠퍼스를 돌며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대학 캠퍼스에도 바로 뛰어 들어갔다. 무기력증과 치매로 늘 기운이 없는 외할머니를 찾아가 복음을 전해 할머니도 주님을 영접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나를 도구로 일하시는 주님께 감사와 기쁨의 눈물만 나왔다.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사람의 영광을 좇아 힘들게 살았던 내가 지금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최고의 인생을 살고 있다. 나를 새롭게 바꾸어 주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린다.
박우혜 청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