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찰청 신·구 부장(검사장)들이 30일 오후 5시30분 대검 8층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신고를 마친 뒤 각자의 방이 있는 7층으로 내려왔다. 7층 복도에는 전국 각지에서 ‘특수통’으로 이름을 날리던 검사들이 많이 보였다. 올해 첫 검사장에 승진한 사법연수원 27기 특수통 2명도 7층 복도를 나란히 걸었다. 반면 ‘공안통’들의 화기애애한 모임은 볼 수 없었다. 검사장 승진 대상자였지만 고배를 마신 25기와 26기 공안통 다수는 사의를 표했다.
떠나는 검사장과 새로 오는 검사장들이 복도에서 악수했고, 사무실로 들어가 인수인계를 겸한 환담을 나눴다. 방을 비우고 떠나는 검사장들은 쓸모없어진 책과 집기를 버렸다. 집기들이 나올 때, 한편으로는 새 검사장들을 위한 꽃 선물이 들어갔다.
이날 대검의 풍경은 검찰의 양대산맥으로 불리던 특수·공안의 성쇠를 보여준다. 올해 ‘검찰의 꽃’ 검사장 승진에서 두 분야 차장검사들의 희비는 엇갈린 편이다. 대공·시국사건 수사가 강조되던 시절 공안은 ‘엘리트 검사’ 양성 코스로 받아들여졌다. 안대희 전 대법관, 주선회 박한철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 등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으로 진출하는 검찰 인사는 대개 공안”이라는 인상을 주던 때도 있었다.
그런 공안의 전성기는 김대중·노무현정부 들어 꺾이기 시작했다. 2006년 2월 인사에서 황교안 당시 서울중앙지검 2차장, 박철준 당시 부천지청장이 검사장 승진에 탈락했다. 이 장면은 젊은 평검사들의 ‘주특기’ 선택에도 영향을 줬다. 검사장으로 퇴직한 한 법조인은 “서울중앙지검 총무부가 평검사들에게 인사 희망 부서를 조사했을 때 공안 부서를 1지망으로 쓴 검사가 1명도 없던 해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공안 검사들은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부터 이어진 검찰의 ‘적폐 수사’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었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에는 고유 영역을 조금씩 잃어 갔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 취임 직후인 2017년 7월 고위직 인사 때에는 ‘기획통’ 권익환 당시 법무부 기획조정실장이 대검찰청 공안부장에 임명됐다. ‘공안통’ 이상호 당시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은 대전지검장이 됐다. 이때 법조계에서는 “둘의 인사가 바뀐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특수통이 이때부터 전통적인 공안통의 자리에서 중용되기 시작했다. 2017년 8월엔 특별수사 경력이 많은 박찬호 당시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장이 2차장에 올랐고, 그는 이번에 검사장으로 승진해 대검 공안부장을 맡았다. 박 검사장이 있던 2차장 자리의 후임자로 현재 거론되는 이들도 공안 수사 경험이 많다기보단 특수통으로 분류되는 이들이다.
부정부패 척결이든 국가체제 수호든, 큰 틀에서는 결국 같은 검찰의 일이라는 주장도 있다. 다만 공안통으로 분류됐던 한 전직 검사장은 “공안 수사를 특수의 기법으로 할 순 없다”며 “공안 검사 개개인이 20년가량 축적한 역량이 사라지는 건 국가적 손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름대로의 전문성을 쌓으며 헌신한 특수통을 공안과 기획 등 경력과 무관한 분야로 보내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구승은 허경구 기자 gugiz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