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사태 이후 자유한국당이 번번이 ‘지는 협상’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당내에서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여야 교섭단체 원내대표가 서명한 국회 정상화 합의문을 한국당 의원들이 의원총회에서 거절한 뒤 원내 협상력이 현저히 약화됐다는 것이다. 전날 여야 교섭단체 원내대표 간 협상에서도 한국당은 그동안 주장해 온 북한 목선 국정조사, 정경두 국방부 장관 해임건의안 중 하나도 관철하지 못했다.
7월 임시국회 의사일정 합의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숙원’이었던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를 얻어냈지만, 한국당은 ‘안보 국회’만을 받았다. 운영위원회, 국방위원회, 외교통일위원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 등을 일제히 열겠다는 것인데, 당연히 열어야 할 상임위 소집을 협상 성과로 보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마저도 휴가철 의원들의 참석 여부가 사전에 파악되지 않아 국방위 전체회의는 다음 달 5일로 연기됐다.
지난달 24일에도 나경원(사진) 한국당 원내대표가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당내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고 ‘합의 정신에 따라 처리한다’는 합의문에 서명한 것을 두고 당내 반발이 나왔었다. 결국 이 합의문은 의원총회를 통과하지 못했고, 4일 뒤 정치개혁특별위원회와 사법개혁특별위원회 활동 기간을 연장하는 선에서 협상이 일단락됐다. 당시 나 원내대표는 리더십에 큰 타격을 입으면서 사퇴론까지 불거졌었다.
원내지도부를 지낸 한국당 중진 의원은 30일 “전략적으로 문제가 있다”며 “처음에 북한 목선이 넘어왔을 때도 우리가 국정조사를 집요하게 요구했어야 했는데, 안 받아줄 것 같다 싶으면 돌아서는 모습을 보인 게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패스트트랙 사태 때도 석 달 동안 장외투쟁을 하다가 아무 성과도 없이 들어왔는데, 여당이 여론을 업고 밀어붙이면 야당은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한다는 걸 몇 번째 보여주고 있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여론을 설득하는 호소력이 부족하다는 자성도 나온다. 다른 한국당 의원은 “추경도 ‘한국당이 발목 잡고 있다’는 인상이 강한데 선심성·총선용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홍보를 계속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며 “여당에 설득이 안 먹히면 국민에게 호소해야 하지만 그런 호소력도 지금 우리 당에는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원내지도부뿐 아니라 당 차원에서도 명확한 노선 없이 외부 이슈를 따라가는 데 급급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황교안 대표가 영수회담을 요구하다가 원내 교섭단체 3당 회동으로 한발 물러선 뒤 별 성과 없이 5당 대표 회동을 받아들인 것도 명분이 없다는 평가다. 이마저도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일본의 수출규제와 한반도 평화 등을 의제로 내걸며 먼저 회동을 제안한 것이라 주도권을 뺏겼다는 해석도 나왔다.
당 지도부는 “아쉽지만 야당이니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다. 한국당 핵심 관계자는 “한국당이 정부의 발목을 잡는 것처럼 보이는 데 대해 의원들의 부담이 컸다. 추경도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는 판단 아래 양보를 한 것”이라며 “본의 아니게 매번 한국당이 여당에 무릎을 꿇는 것처럼 비쳐 씁쓸하다”고 말했다.
당 고위 관계자는 “계속 싸우고 있으면 빨리 국회로 들어오라고 하고, 들어가면 받은 것 하나 없이 오냐고 비판받는 상황”이라며 “득실을 따지지 않고 우리는 우리의 계획대로 가고 있다”고 했다.
심희정 심우삼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