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중국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를 앞두고 중국 지도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홍콩 시위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데다 미·중 무역전쟁의 실마리도 풀리지 않는 등 현안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시진핑 국가주석 체제가 성급하게 공세적인 외교정책을 폈다가 미·중 무역전쟁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이 제기된 데 이어 올해는 홍콩 시위에 대한 대처 문제가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홍콩 사태가 반중 성향을 자극하며 대만 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부분도 중국으로서는 신경이 쓰이는 대목이다.
올해 베이다이허 회의는 홍콩의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 반대 시위, 미·중 무역전쟁, 대만 대선, 중국 경기둔화 등이 주요 의제로 예상되지만 중국 지도부가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기 쉽지 않아 고민이 클 것이라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30일 전했다.
베이다이허 회의는 매년 7월 말~8월 초쯤 중국의 전·현직 수뇌부들이 베이징에서 동쪽으로 300㎞ 떨어진 휴양지 베이다이허에서 휴가를 겸해 각종 현안을 논의하는 비공식 회의다.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 시작과 1958년 중국군의 대만 진먼다오 포격 결정이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이뤄졌다.
올해 베이다이허 회의에서는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에 대한 대처방안과 미·중 무역전쟁 해법이 집중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홍콩 시위가 과격 양상을 보이자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판공실은 기자회견을 통해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며 인민해방군(PLA) 투입 가능성까지 열어둔 상황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날 오전 7시30분부터 카오룽반도 동쪽 튜컹렁 지하철역에서 시위대가 지하철 운행을 방해해 출근길에 큰 차질이 빚어졌다. 시위대가 지하철 승차장과 차량 사이에 다리를 걸치고 서는 시위를 벌이면서 차량 문이 닫히지 않아 지하철 운행이 멈춰선 것이다.
전날 홍콩·마카오판공실의 시위 강력 대처 방침이 발표되자 홍콩 젊은 시위대 사이에선 지하철 운행 방해뿐 아니라 도로의 차량운행 방해, 홍콩 국제공항 시위 아이디어가 나왔다. 홍콩 버스노조는 버스를 서행 운전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게다가 미국과 영국 등 서방국가들은 홍콩의 자치권 보장을 명목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분위기여서 새로운 외교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중국 지도부는 또 반중국 성향의 대만 차이잉원 총통이 내년 선거에서 낙선하기를 기대하지만 최근 홍콩의 반중 시위가 격화되면서 차이 총통의 인기가 올라가 고민이 적지 않다. 차이 총통과 대권을 겨루는 국민당 한궈위 가오슝 시장은 친중 성향이어서 대만 대선을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미·중 무역전쟁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도 핵심 논의 과제다. 미국과 중국은 무역협상 좌초 후 2개월 만에 상하이에서 이날 다시 만났지만 돌파구를 찾기는 쉽지 않은 분위기다. 핵심 쟁점에서 양측의 입장차가 너무 크다.
시 주석은 이날 공산당 중앙정치국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중국 경제가 도전에 직면했다면서 올 하반기 경제 기조로 ‘온중구진’(穩中求進·안정 속 진전)을 내걸었다고 관영 CCTV가 보도했다. 베이다이허 회의 개막을 앞두고 시 주석의 경제정책 방향을 국내외에 보여주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