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 대박’ 올해만 벌써 4편… 갈 곳 잃은 작은 영화들

입력 2019-07-31 00:05
올해는 국내 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무려 네 편의 1000만 영화가 나왔다. 사진은 2800개 이상의 스크린을 점유하며 독과점 논란을 부른 ‘어벤져스: 엔드게임’ 개봉 당시 서울 시내 한 극장의 모습. 비슷한 시간대 여러 상영관에서 전부 해당 영화만 상영되고 있다. 뉴시스

한국영화 100년 역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한 해의 반환점을 막 지난 시점, 1000만 영화가 무려 네 편이나 탄생했다. 스크린 독과점으로 인한 극장가 쏠림 현상이 극에 달한 모양새다. 잘 되는 영화에 관객이 더 몰리는 구조가 정착되면서 작은 영화들은 외면받고 있다.

역대 코미디 영화 최고 흥행작 ‘극한직업’(감독 이병헌·누적 1626만명)이 1월 스타트를 끊었다. 4월 마블의 야심작 ‘어벤져스: 엔드게임’(안소니 루소, 조 루소·1393만명)도 예상대로 1000만 대열에 합류했다. 7월 디즈니 실사 영화 ‘알라딘’(가이 리치·상영 중)이 박스오피스 역주행 끝에 1000만 위업을 달성한 데 이어 ‘기생충’(봉준호·상영 중)마저 1000만 문턱을 넘었다.


‘대박’ 영화들이 잇달아 나오면서 시장 자체의 볼륨은 커졌다. 상반기 전체 극장 관객 수는 1억932만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96만명(13.5%) 증가했다. 동시에 양극화 현상은 더 심화됐다. 거대 자본과 대형 투자·배급사를 등에 업은 영화들이 2000개 안팎의 스크린을 독식하며 손님을 끌어모으는 사이, 저예산으로 제작된 다양성 영화들은 아예 관객의 시야 밖으로 밀려났다.

시장의 허리 역할을 해줄 ‘중박’ 영화가 크게 줄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올해 개봉한 영화 가운데 관객 200만~400만명을 동원한 작품은 단 7편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100만명대 이하의 관객을 간신히 모으는 수준에 그쳤다. 개봉과 동시에 스크린에서 사라지는 영화들도 부지기수다. 이 같은 극장가의 기형적 쏠림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우려를 표하고 있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한국의 스크린 현황으로 봤을 때 이는 기현상”이라면서 “보통 1000만 영화의 경우 초반 관객몰이가 중요하다 보니 지나친 스크린 독과점을 동반하는데, 이는 관객의 선택지를 줄어들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다. 작지만 좋은 작품들이 스크린에 걸리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1000만 영화가 과연 건강한 영화 산업을 이끄는지 재고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작품 자체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최근에는 독특하고 새로운 발상이 돋보이는 영화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다들 기존 상업영화의 흥행 코드만 따라가려 하기 때문”이라며 “창의력의 부재도 양극화를 이끌어내는 요인이다. 본 사람도 없고, 반응도 없다는 건 그 영화 자체의 힘이 약하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스크린 독과점은 국내 영화계의 고질적인 문제다. ‘개봉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영비법 개정안) 등 제도적 방안들은 그야말로 ‘논의’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해지면서 작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나날이 피가 마르고 있다.

독립영화 배급사 시네마달의 김일권 대표는 “독립·예술영화 배급 상황은 이전보다 훨씬 열악해졌다. 프라임 시간대 회차 상영관을 잡기가 너무나 힘들어졌다”고 호소했다. 이어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해소된다고 해서 여건이 크게 나아지리라 보지는 않는다. 전체적인 극장 배급 상황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어떻게 균형 있게 만들 것이냐는 문제를 고민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