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11 테러를 배후 조종한 칼리드 셰이크 무함마드가 사형을 모면하는 대가로 법정에서 증언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9·11 희생자 유가족들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테러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소송을 벌이고 있다. 무함마드는 법정 증언을 해달라는 유가족 측 요구에 사형 면제를 역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무함마드는 관타나모 수용소 군사재판에서 사형 판결을 받지 않는 대신 9·11 유가족이 사우디 정부에 제기한 소송을 도와줄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9일(현지시간) 법원 문서를 인용해 보도했다.
무함마드는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의 최측근으로 9·11 테러의 세부 사항을 직접 입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함마드는 2003년 파키스탄에서 미국 중앙정보국(CIA)에 체포됐으며 2006년 관타나모 수용소로 옮겨져 지금까지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무함마드는 테러 혐의로 기소돼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군사재판을 받아왔지만 2012년 이후에는 공판조차 열리지 않고 있다.
9·11 테러 유가족들은 무함마드가 사우디 정부의 테러 가담 의혹을 규명할 수 있는 단서를 갖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사우디 정부가 당시 알카에다에 자금 지원을 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에서는 당초 타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없었지만 2016년 ‘테러지원국에 맞서는 정의법(JASTA)’이 통과되면서 미국을 겨냥한 테러에 한해 외국 정부에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됐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당시 사우디와의 동맹 관계를 고려해 거부권을 발동했지만 끝내 법안 통과를 막지 못했다.
유가족들은 무함마드를 포함해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힌 9·11 테러 관련자 3명에게 법정 증언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WSJ에 따르면 무함마드는 변호사를 통해 “지금으로서는 법정 출석에 동의할 수 없다”면서도 “사형 판결을 받을 우려가 사라진다면 더욱 폭넓은 협조가 가능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무함마드는 수감생활 동안 큰 심리적 변화를 겪었다고 주변 사람들이 전했다. 무함마드는 2008년 6월 공판 당시 판사가 “사형이 선고될 수도 있는 사건”이라고 언급하자 “내가 바라던 바다. 순교자가 될 방법을 오래전부터 찾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년 넘게 지난 지금 무함마드 등 수감자들은 순교자가 되는 데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