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린 요셉, 변치않는 신앙으로 쓰임받아

입력 2019-08-01 00:07
지난해 8월 우수한 성적으로 모세오경 아카데미를 수료한 파주 순복음삼마교회 아동부 어린이들이 바이블 교수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순복음삼마교회 제공

요셉의 절대주권 세우기

요셉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어떻게 세웠을까. 다양한 사건이 있지만 크게 3가지 테스트를 통과했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로 요셉은 기다림의 훈련을 통과했다. 하루가 1000년 같고 1000년을 하루 같이 여기시는 하나님은 사람을 훈련시킬 때 기다림의 훈련부터 시작하신다. 반면 사람은 이 훈련을 힘들어한다. 인간은 이기적이어서 자신의 시간에 모든 것이 이뤄지길 원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아내를 빼앗기고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릴 때 얼마나 불안하고 두려웠을까. 모세가 홍해 앞에서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릴 때 얼마나 초조했겠는가. 다니엘은 사자굴로 가면서 자신의 시간이 끝났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이 정한 시간에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인생에서 절대주권을 세운다는 것은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는 훈련이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총무로 재산을 관리할 때 얼마든지 보디발에게 부탁해 아버지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국무총리가 됐을 때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아버지와 형제들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총리가 된 지 9년이 지났는데도 아버지의 소식을 듣기 위해 인간적인 방법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렸다.

가족이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자신이 총리가 됐음을 얼마나 자랑하고 싶었을까. 그러나 그는 세월의 흐름과 관계없이 하나님의 시간 속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 곡식단이 절했듯이 때가 차면 자신을 노예로 팔았던 형들이 절할 것을 믿었다. 요셉은 그 꿈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임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주권이 세워진 자가 아니면 불가능한 이야기다.

요셉이 국무총리가 되고 온 땅에 7년 풍년이 왔다. 요셉은 양식들을 사들여 창고에 쌓았다. 7년의 대풍년이 끝나자 7년의 대기근이 시작됐다. 2년째 기근이 들자 창고에는 양식이 떨어졌고 양식을 사기 위해 사람들이 애굽으로 몰려들었다.

야곱의 식구들도 막내였던 베냐민만 빼고 모두 양식을 구하려 애굽으로 왔다. 요셉은 양식을 구하기 위해 엎드려 절하는 형들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이 주셨던 꿈이 생각났다. 그리고 하나님의 꿈이 현실임을 회상하게 됐다. 이러한 신앙인을 누가 이길 수 있겠는가.

순복음삼마교회는 신앙생활을 할 때 요셉이 걸어갔던 것처럼 꿈을 갖고 앞으로 나갈 것을 독려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죄 씻음을 얻고 의인이 됐음을 믿고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사단은 언제나 우리에게 죄책감과 죄의식을 준다. 하지만 속아서는 안 된다.

지난날의 죄악 된 모습을 자꾸 돌아본다면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처럼 마귀의 손에 빠질 것이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성령과 하나 돼 기뻐하며 감사하는 것이다. 기도하며 부활의 날을 기다리며 찬송하며 전진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모세오경을 훈련한다. 거기에 미래로 가는 신앙 로드맵이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원수 사랑의 시험을 통과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 45:5) 요셉은 형제들이 악한 마음으로 자신을 노예로 팔았지만, 이는 하나님께서 기근의 때를 위해 오래전부터 계획한 것이라며 형제들을 위로해줬다. 이는 주권이 세워진 사람만 할 수 있는 언어이다. 온전한 신앙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이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신앙의 모델이었던 사람들은 원수가 핍박할 때 그들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신앙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수를 사랑할 때 주님의 마음만큼 넓어지고 세상의 지도자가 될 만큼 품이 커진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신 것이다.(마 5:44)

요셉이 국무총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꿈을 꾸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을 노예를 팔았던 형제들의 죄책감을 위해 기도했고 그들이 무사하기를 기도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했던 것이다. 출세만을 바라며 분노의 칼을 갈았다면 하나님은 요셉을 총리로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세 번째로 요셉은 자신의 유골이 가나안에 묻히길 원했다. 요셉의 유언은 한 가지였다. 자신이 죽은 뒤 유골을 가나안 땅에 묻어달라는 것이었다. 요셉의 유언은 400년 후에 실현됐다. 출애굽할 때 모세의 손에 요셉의 유골이 있었기 때문이다.(출 13:19)

요셉은 열한 번째 동생이었으나 형들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났다. 이 땅에서 그는 험한 세월을 보냈다. 젊은 날에는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로 막노동을 하며 살았다. 사형수가 돼 감옥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살았다. 그래서 세상을 일찍 떠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셉은 한 번도 신앙을 잃어버린 적이 없었다. 그의 삶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했더라”라는 말이 가는 곳마다 기록됐기 때문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야훼 신앙을 잃어버리지 않았던 원동력은 어디에 있었을까. 야곱의 무릎에서 아브라함의 신앙을 배웠기 때문이었다. 순복음삼마교회가 젊은이들이나 연로하신 분들에게 혹독하리만치 성경을 훈련시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일성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