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불처럼 번지는 지자체의 ‘노 재팬’ 운동, 불매·지명 지우기…

입력 2019-07-31 04:03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앞에서 30일 일본 수출 규제 공동대응 지방정부연합 주최로 열린 일본 수출 규제 조치 규탄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피켓을 든 채 일본 정부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권현구 기자

‘아베 신조 일본’의 ‘한국=백색국가 리스트(White List) 제외’가 기정사실화 돼가는 가운데, 이번엔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노 재팬(No Japan) 운동’에 적극 가세하는 모양새다. 일본 정부의 대(對)한 수출 규제 비판과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넘어 일제 강점으로 유래된 역사 바로잡기 운동마저 벌일 태세다.

지자체들은 소속 지방공무원의 일본 연수 금지에 나서는가 하면, 지역 내 친일 시설물을 발굴해 청산하겠다는 선언도 내놓고 있다. 아울러 자체 발주하는 각종 구매물품에서 일본산을 배제하고 일반 소비자들의 자발적인 일본산 불매운동을 적극 장려하겠다고 나서는 지자체도 늘고 있다. 일부 지자체와 지방의회는 일본 전범기업과의 물품구매 등 각종 계약을 제한하는 지방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 수출 규제 공동대응 지방정부연합’ 소속 기초 지방자치단체장들이 30일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 수출 규제 조치 규탄대회’에서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수영 서울 양천구청장, 정원오 성동구청장, 문석진 서대문구청장, 염태영 경기도 수원시장, 김미경 서울 은평구청장, 박용갑 대전 중구청장. 권현구 기자

일본 수출 규제 공동대응 선언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 52곳이 모여 만든 ‘일본 수출 규제 공동대응 지방정부연합’은 30일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규탄대회를 열고 일본산 제품 불매운동에 적극 가담하기로 결의했다. 이에 앞서 지난 23일 전국 226개 지자체장 모임인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는 “연수 등 공무 목적으로 일본을 방문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방정부연합은 “일본의 수출 규제는 과거사 문제를 경제 보복으로 확전한 행위”라며 “지방정부는 일본제품 불매운동 및 일본 여행 보이콧 등의 생활실천 운동을 적극 지지하고 동참한다”고 역설했다.

‘지방정부 물품, 일본산은 No!’

개별 지자체들은 자체 물품으로 일본산을 구매하지 않겠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강원도 원주시는 시에서 발주하는 구매품목 중 일본산 제품 구매를 중단키로 결정했다. 또 시가 발주하는 공사계약의 경우 설계 단계에서부터 일본산 자재들이 배제되도록 철저하게 관리 감독하고, 아파트 등 지역 내 일반 공사에 대해서도 일본산 자재 배제를 권고키로 했다.

충남도와 충남시장군수협의회는 지난 25일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조속한 시일 내에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를 해제하지 않으면 일본산 불매운동을 지자체 차원에서 전개할 것”을 다짐했다. 충남도와 협의회는 “수출 규제를 철회하지 않는다면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함께 전개하고, 규제가 철회될 때까지 공무수행을 위한 일본 방문을 중단할 것”이라고 했다.

경북도의회 황병직 의원(영주)은 ‘일본 전범기업과의 수의계약을 제한하는 조례’ 제정에 나섰다. 일본 전범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을 경북도와 경북도교육청, 공공행정기관에서 퇴출시키겠다는 것이다.

제주도공무직노동조합은 29일 기자회견을 갖고 ‘노 재팬’ 운동 전개 방침을 밝혔다. 이들은 “아베 정부는 강제징용, 위안부 문제 등과 관련해 진심어린 반성은커녕 지속적인 역사왜곡과 가짜뉴스 남발을 이어왔다”며 “제주도민과 함께 일본 여행을 자제하고 강렬한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했다.

공무원 연수도 일본은 안 가

원주시는 일본산 물품 구매 중단뿐 아니라 시 소속 모든 공무원의 일본 출장과 연수, 교육 등도 무기한 중단키로 했다. 울산 울주군은 일본 홋카이도 치토세스포츠센터 등 체육시설 3곳을 벤치마킹할 예정이었지만 취소했다. 울산시의회 손종학 의원은 공무수행을 위한 일본과의 교류 사업을 전면 중단해 달라고 울산시에 요청하기도 했다.

광주시교육청은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일본 나고야소송지원단, 도야마호쿠리쿠연락회 등과 손잡고 당초 지난 26일부터 8월 2일까지 7박8일 일정으로 광주지역 고교생 24명을 대상으로 평화교류행사를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전면 백지화했다.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도 하반기로 예정된 민주당 소속 일부 시·구의원들의 일본 연수를 전면 취소했다. 광주시당 관계자는 “일본의 보복조치가 철회될 때까지 의원들의 일본 연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일본관광 포기 여행객에겐 할인!

경기도 파주시는 7월 이후 일본 여행을 취소한 여행객을 대상으로 8월 1일부터 파주시티투어를 50% 할인해 주는 이벤트를 진행한다. 전 국민이 대상이며, 신청방법은 시티투어 예약 시 항공 및 선박 등의 예약취소 증빙자료만 이메일이나 모바일 사진 전송 등으로 제출하면 된다.

경북 포항의 대저해운은 일본 방문 포기 여행객에게 울릉도·독도 운항료를 할인해 주는 이벤트를 실시한다. 울릉도·독도를 방문할 경우 포항~울릉 썬플라워호, 울릉~독도 엘도라도호 요금을 30% 할인한다. 경주문화엑스포도 일본관광 취소 여행객에게 다음달 25일까지 열리는 ‘여름 풀(Pool) 축제-핫 서머 버블 페스티벌’의 입장료를 50% 할인해 주고 있다. 전남 곡성 석곡농협은 일본 여행을 취소한 소비자에게 쌀을 주는 이벤트를 펼쳤다.

고개드는 친일 역사 바로잡기

광주시는 29일 새로 발견한 비석, 누정 현판, 교가, 군사시설 등 65개 친일 시설물에 단죄문을 설치하기로 했다. 단죄문은 해당 인사나 시설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적시해 관련 인물들의 친일 행각을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한 철판 표식이다.

대구시의회에서 최근 일본제국주의를 상징하는 군사기와 유사 디자인 등의 공공사용을 제한하는 ‘일제 상징물 공공사용 제한 조례안’ 제정을 추진했지만 이 조례와 관련된 상위법의 국회 계류를 이유로 유보됐다.

경북 칠곡군 역사바로세우기추진위원회는 ‘일본인 숙소’라는 뜻을 지닌 ‘왜관(倭館)’ 지명 지우기에 나섰다. 왜관은 조선 시대 부산, 울산 등 전국 10곳에 설치됐다 폐쇄됐으며 현재 지명으로 남은 곳은 칠곡군 ‘왜관읍’뿐이다. 단지 일본인이 통상에 종사하며 살았다는 이유로 일제에 의해 지어진 왜관 지명을 사용하는 것은 지역 정체성에 맞지 않다는 게 추진위의 설명이다. 앞으로 군민 서명운동, 행정소송, 국민청원 등을 통해 ‘칠곡’ 지명 되찾기 운동을 전개해 나갈 방침이다.

오주환 김재산 기자, 전국종합 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