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국가 간 거래’라는 국제 통상 질서의 기본 틀이 위태롭다. 미국이 대(對) 미국 무역수지 흑자국을 겨냥해 질서를 흔들면서 촉발된 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을 포함한 개발도상국들의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고까지 언급했다. 앞서 일본은 한국을 상대로 보호무역주의를 펼치며 가세했다.
중국 전국시대에 비견될 만큼 통상 질서가 혼란스러워진 데는 두 가지 달라진 상황이 영향을 미쳤다. 우선 기존 자유무역주의가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개도국의 경제 상황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사실도 기존 틀을 흔드는 데 일조했다. 한국도 새로운 흐름에 대비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자유무역주의는 미국이 보호무역 기조를 내세우면서 변곡점을 맞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취임 이후 양자 간 이뤄진 자유무역협정(FTA)부터 손보기 시작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시작으로 한국과 직결된 한·미 FTA까지 개정했다. 이후에는 관세라는 무기를 꺼내들었다. 수입산에 최대 25%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무역확장법 232조를 활용해 보호무역주의를 펼쳤다. 지난 5월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한 게 대표적이다.
일본도 흐름에 편승했다. 한국으로 향하는 반도체 핵심소재 등 소재 3종의 수출을 제한했다. 미국과 차별화되는 부분은 한국이란 특정 국가를 지목한 점이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한 정치적 상황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급기야 개도국 ‘지위’를 둘러싼 논쟁으로까지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5일 발전된 국가가 세계무역기구(WTO)에서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지 않도록 수단을 강구하라고 무역대표부(USTR)에 지시했다.
중국을 직접적으로 겨냥했지만 한국도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은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아 쌀에 보조금 혜택을 주고 수입 물량을 제한하고 있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29일 “미국은 어떤 식으로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한국이 목표는 아니지만 받는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달라진 국제경제 환경이 불러온 현상이라고 본다. 우선 자유무역주의보다 앞서는 ‘자국 우선주의’가 국제사회에 확산됐다. 영국은 자국 이익을 위해 2016년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했다. 미국의 ‘판 흔들기’도 자국 자동차 산업의 쇠락과 같은 현상을 개선하는 게 주 목적이다. 중국이 G2로 꼽히고, 인도나 브라질 등 신흥국이 경제 규모를 키운 면도 중요한 변화다. 과거 선진국과 개도국을 분류하던 기준이 모호해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당장 한국이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지 못해 달라지는 건 없다”면서도 “과거 협상 결과를 참조해 조금씩 바꿔나갈 필요는 있다”고 제언했다.
세종=신준섭 전슬기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