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굵은 빗줄기를 쏟은 악천후에 경기는 2시간이나 지연됐다. 하루 전까지 선두였던 ‘골프천재’ 김효주(24), 2위였던 세계 톱랭커 박성현(26)이 오버파를 기록하고 무너질 정도로 날씨의 변수는 강력했다.
고진영(24)은 냉정했다. 경기 시작을 기다리며 성경 말씀을 듣고 마음을 다스렸다. 그래서였을까. 고진영은 1번 홀부터 연달아 파 세이브에 성공하더니 6번 홀부터 2연속 버디를 잡아냈다. 코스를 완주할 때까지 보기를 1개로 막고, 티샷에서 페어웨이를 놓친 적이 한 번일 정도로 라운딩은 안정적이었다. 김효주에 4타 뒤진 공동 3위에서 출발했지만 마지막 18번 홀을 끝냈을 땐 리더보드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고진영은 29일(한국시간) 프랑스 에비앙 리조트 골프클럽(파71·6527야드)에서 끝난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대회 에비앙 챔피언십 최종 4라운드에서 버디 5개와 보기 1개로 4타를 줄여 최종합계 15언더파 269타로 우승했다.
고진영은 올 시즌 투어에서 가장 먼저 3승 고지를 밟은 선수가 됐다. 그중 2승을 메이저대회에서 수확했다. 고진영은 지난 4월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정상에 올랐다. 고진영은 박성현에게 한 달간 내줬던 세계 랭킹 1위도 탈환했다.
고진영은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일정하게 거처를 둘 수 없는 투어 생활을 하면서도 고등학생 때부터 가진 신앙을 유지하고 있다. 2017년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우승할 당시 고비를 마주할 때마다 “하나님이 대신 쳐주세요”라고 기도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성경을 읽거나 시간이 날 때마다 유튜브를 통해 목사님들의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을 안정적으로 유지해 지금의 강철 같은 정신력을 갖게 됐다.
고진영은 이날 우승을 확정한 뒤 인스타그램에 연결된 팬 2만명에게 인사하면서 가장 먼저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적었다. 그는 이어 “2시간이 지연돼 설교 말씀을 들었다. 그 시간이 참 감사했다”고 말하며 우승의 원동력이 믿음이었음을 소개했다.
시종일관 냉정했던 고진영은 시상식에서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참지 않았다. 스카이다이버가 하늘에서 내려와 태극기를 고진영의 어깨에 걸쳐주는 이벤트를 선보였고 갤러리는 박수로 축하했다. 이때 애국가가 연주되자 고진영은 울음을 터뜨렸다. 고진영은 “낯선 땅에서 태극기가 내려오는 모습이 감격스러웠다.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