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를 이유로 수출 규제 조치를 취한다는 일본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갱신해 안보 협력을 해야 한다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드러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한국 정부가 전향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않는 한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져 한·일 관계는 출구를 찾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스가 요시히데(사진) 일본 관방장관은 29일 정례 브리핑에서 GSOMIA 갱신 문제와 관련해 “2016년 체결 이후 매년 자동 연장돼 왔다”며 연장을 희망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스가 장관은 “양국 간 군사정보보호협정은 안보 협력과 연대를 강화해 지역 평화와 안정에 기여한다”면서 “한·일 관계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협력해야 할 과제는 협력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점을 감안해 적절하게 대응하겠다”고 덧붙였다.
GSOMIA의 유효 기간은 1년으로 기한 만료 90일 전(8월 24일) 어느 쪽이라도 협정 종료 의사를 통보하면 종료된다. 한국 내에서는 일본의 수출 규제 강화 조치 이후 협정을 파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 강화의 명분으로 ‘신뢰 상실’을 들고 있는 만큼 가장 민감한 군사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스가 장관은 또 부산시가 최근 한·일 관계 개선 때까지 일본과의 행정교류 사업을 중단키로 결정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그는 “양국 관계의 미래를 위해 국민 간 교류와 자치단체 간 교류는 계속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일어나고 일본 관광 중단이 이어지면서 일본 기업과 지자체의 피해가 현실화되고 있음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징용 배상 문제 등과 관련해 한국 정부가 ‘건설적인’ 대응책을 제시하지 않는 한 한·일 정상회담에 응하지 않는 등 강경대응 방침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극우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이날 “아베 총리는 ‘볼(공)은 한국 측에 있다’며 한국 정부의 대응을 기다린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면서 “9월 유엔총회 등에 문 대통령이 참석하더라도 현 상태로는 한·일 정상 간 직접적인 대화의 장을 마련하지 않겠다는 것이 일본 정부 방침”이라고 전했다.
일본 정부는 이르면 다음 달 2일 각의(국무회의)를 열어 수출 규제상 우대 조치를 적용하는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 대상에서 한국을 제외해 군사 전용이 가능한 모든 물품의 한국 수출을 통제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할 예정이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