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내가 이형자 권사님께 전화를 하게 된 배경이 있었다. 통화하기 얼마 전 한얼산기도원에서 구국기도회가 열렸는데 나도 거기에 참석했었다. 그때 이 권사님의 간증을 들었다. 미대를 졸업하고 몸이 많이 아팠던 일, 신앙적으로 갈등했던 일, 그러나 남편과 함께 신앙으로 승리했던 삶을 간증했는데 은혜를 많이 받았다. 그때 ‘횃불회’라는 모임을 하고 있고 특히 여의도광장에서 열리는 세계복음화대회를 물질적으로 후원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래서 그 모임에 가서 밀알도 소개하고 장애인에 대한 계몽도 하고 싶었던 것이다.
(포털사이트에서 영상이 노출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후원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특히 당시 시각장애인을 위한 녹음사업을 시작했는데 돈이 보통 많이 드는 게 아니었다. 테이프를 구입하는 비용 말고도 대량으로 복사할 때의 복사비가 드는데 이게 우리로선 큰 부담이었다. 그래서 모든 단원이 기도하면서 해결방법을 찾고 있던 차였다.
모임 참석 전날부터 마음이 설렜다. 잠도 잘 오지 않았다. 허락받은 30분 동안 할 이야기를 차근차근 생각하고 글로 써서 정리도 했다. 반복해서 읽어보며 몇 번씩이나 연습했다. 모임에서 큰 감동을 줘야 하고 그래서 밀알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바람에서였다.
긴장돼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내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그 모임에서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분이 하용조 목사님이라는 것은 거기 가서야 알았다. 그날은 약 100명 정도의 사모님들이 모였다. 11시에 시작된 모임에서 먼저 하 목사님이 메시지를 전했다. 그 순서가 끝나자 한 분이 내게 와서 귀에다 대고 말을 했다. “본래는 지금 강의를 할 차례이지만 갑자기 손님이 오셔서 그러니 그분 먼저 하신 다음에 하시지요.”
나는 물론 괜찮다고 했다. 손님은 당시 한국의 대표적 선교사였던 윤수길 선교사님이었다. 윤 선교사님은 태국에서의 사역을 소개하며 비참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생활상을 전하고 거기서 어렵게 선교사역을 하는 이야기들을 약 1시간에 걸쳐 말씀했다.
반응은 무척 좋았다. 여기저기서 ‘아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 역시 감동을 받았고 태국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된 유익한 강연이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불현듯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참석자의 마음이 온통 태국으로 향해 버린 분위기에서 장애인 선교를 말한다고 무슨 감동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었다. 더구나 그분은 유명한 선교사님이고 이미 많은 업적을 쌓은 분이며 나는 그에 비하면 풋내기 신학생 아닌가. 그분 바로 뒤에 나가서 말을 해야 한다니, 참으로 느티나무 밑에서 그늘을 만들어야 하는 작은 풀잎의 심정이었다. 절대로 넘을 수 없는 벽 앞에 선 사람처럼 무기력함과 패배감이 엄습해 왔다.
윤 선교사님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사회자가 나를 잠깐 소개한 뒤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그때 한 사람이 내게로 와서 귓속말로 속삭였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으니 5~10분 이내로 해 주세요.”
그렇지 않아도 마음이 위축돼 있던 차에 그 말은 한 대를 더 맞는 기분이었다. 밀알을 너무 소홀히 대한다는 서운함이 울컥 고개를 쳐들었다. 무대 앞까지 걸어 나가는 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계속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차피 30분용으로 연습했던 내용은 쓸모가 없게 됐고 그 상황에 어울린다고 생각되지도 않았다. 단상 앞에 나와 섰는데 머릿속은 텅 비어 있었다. 아무것도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한동안 서 있었다. 그런데 그때 전혀 예기치 않았던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여러분은 지금 위대한 두 분의 선교사님을 보고 계십니다. 한 분은 태국의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신 윤 선교사님이시며, 그리고 한 사람은 이 땅에 있는 장애인의 복음화를 위해 비상한 결단으로 나아가는 바로 저입니다.”
정말 전혀 의도하지 않은 말이었는데 하얗게 빈 머릿속에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몇 마디를 더 하고 내려왔지만, 뒷말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사실 그 말은 나 자신을 향해 외치는 스스로의 다짐이었다고 봐야 한다. 한없이 작아지고 초라해지고 있는 나 자신을 붙들어야 한다는 무의식이 다소 억지스러운 말을 토하게 했던 것 같다.
사실 내겐 비슷한 경험들이 많았다. 장애인으로 살아오면서 절망과 좌절을 느끼고 삶의 끈을 놓아버리고 싶은 절박한 순간들이 많았다. 그럴 때는 항상 “아니야. 나는 할 수 있어”라는 다소 고집스러운 도전정신으로 이를 악물고 그 상황을 극복해내곤 했다. 그날도 어떤 측면에서는 그와 비슷한 경우였던 것 같다.
그들에게는 그저 당돌하고 건방지게만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도 지금도 내가 그렇게 말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 나는 더욱 열심히 일했고 그 말이 결코 허언이 되지 않도록 축복하시고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모임이 끝나고 모두들 윤 선교사님과 인사하기 바빴다. 뒤에 있는 나와 밀알 임원들에게도 수고한다며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조금 있긴 했다. 우리는 조용히 나왔다. 약속이라도 한 듯 돌아오는 내내 아무도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아침도 먹지 않은 데다 이미 점심때가 넘어 배가 고팠을 것이지만 라면이라도 먹고 헤어지자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다.
이게 한국밀알선교단 단장으로서 외부 강의를 하기 위한 첫 번째 외출이었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정말 값진 공부였고 나를 한 단계 성숙시킨 소중한 경험이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경우도 사람을 의지하면 실망한다는 교훈을 밀알 초기에 일찌감치 깨달은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