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경제보복·북 미사일·러 영공 침범… 문 대통령 휴가 취소

입력 2019-07-29 04:01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주 예정됐던 여름휴가를 전격 취소했다. 집권 3년차를 맞은 문 대통령이 여름휴가를 가지 않는 것은 처음이다. 일본의 경제보복과 북한의 미사일 도발 등 주변 정세가 심상치 않고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휴가를 떠나기가 부담스러웠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 달 8~14일 여름휴가를 갈 예정이었던 이낙연 국무총리도 같은 이유로 휴가를 반납했다.

유송화 청와대 춘추관장은 “문 대통령은 29일부터 8월 2일까지 예정된 하계휴가를 취소하고 집무실에서 정상 근무한다”고 28일 밝혔다. 당초 문 대통령은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시기를 나눠 여름휴가를 쓸 방침이었다. 휴가를 내고 관저에서 쉬는 방안도 검토했다. 문 대통령은 27일 오후까지 휴가 진행 여부를 고민하다 28일 오전 최종적으로 취소를 결정했다고 한다. 청와대는 휴가를 연기한 것이냐는 질문에 “나중에라도 여름휴가를 갈 계획이 잡힌 게 없기 때문에 취소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앞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7월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 사건 때문에 여름휴가를 취소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6년 7월 청남대로 여름휴가를 떠났다가 집중호우가 발생하자 하루 만에 복귀해 수해 복구 상황을 점검했다.

문 대통령은 다만 “청와대 직원들의 예정된 하계휴가에 영향이 없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이에 따라 29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가 참모들의 휴가로 취소됐다. 문 대통령의 이례적인 휴가 취소 결정에는 한·일 갈등과 러시아 군용기의 독도 영공 침범,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이 아직 재개되지 못한 가운데 북한이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점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본이 다음 달 2일 각료회의에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수출심사 우대국가)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됐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일본 상황이 계속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직접 현안을 관리하겠다는 의지”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주 공식 일정을 거의 잡지 않고 외교·안보 현안 대책 마련에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휴가를 가지 않으면서 다음 달 개각 시기가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7년에는 6박7일 일정으로 여름휴가를 떠났다. 강원도 평창 동계올림픽 시설물을 둘러본 뒤 경남 진해의 군 휴양시설에서 휴가를 보냈다. 당시 휴가 직전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해 북한 동향을 수시로 보고받을 수 있는 군 휴양시설을 휴가 장소로 택했다. 지난해 문 대통령은 5일간 여름휴가를 썼다. 충남 계룡대에 머무르며 장태산 휴양림 등을 둘러봤다.

이 총리도 이번 여름휴가를 취소했는데, 이에 대해 총리실 측은 “한·일 관계가 민감한 시기인 점을 고려한 결정”이라며 “총리가 책임감을 갖고 일본과의 접촉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