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떠난 아베… 화이트리스트 한국 배제 예상보다 늦춰지나

입력 2019-07-26 04:07
350여개 단체가 연대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2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아베 신조 일본 정권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대회의는 “모든 갈등의 책임은 과거사를 부인하고 무도한 경제적 도발을 자행한 아베 정권에 있다”고 밝혔다. 서영희 기자

정부가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수출심사 우대국가) 한국 배제 시점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위한 시행령 개정 의견 수렴 시한은 지난 24일로 지났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일본의 정치 일정을 고려할 때 일본 정부가 당장 26일에 한국을 배제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일 갈등은 8·15 광복절과 9월 아베 신조 정권의 개각, 10월 일왕 즉위식 등 세 번의 큰 변곡점을 앞두고 있다. 정부는 최악의 상황 등 다양한 시나리오에 맞춰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

25일 정부에 따르면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한국 제외 시행령 개정이 당초 예상됐던 26일보다 다소 뒤로 밀릴 가능성이 크다. 우선 아베 신조 총리가 참의원 선거를 끝낸 뒤 여름휴가를 떠났다는 점이 변수다.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조치는 일본으로서도 매우 중요한 정치적 결정이기 때문에 총리 휴가 중에 단행될 가능성이 작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의견 수렴 결과 3만건 넘는 의견서가 접수된 것도 배제 시점을 늦추게 하는 요인일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의견서를 살펴보는 ‘숙려 기간’을 최대 14일까지 두고 있는데, 이번처럼 의견서가 많이 접수된 경우에는 이 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

다만 정부는 일본이 화이트리스트 배제 결정을 무작정 뒤로 미루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접수된 의견서의 90% 이상이 한국 제외에 찬성했기 때문이다. 일본이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각의(국무회의 격)를 여는 점을 고려하면 오는 30일 각의에서 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각의에서 결정, 공포되면 21일이 지나 시행된다. 따라서 빠르면 다음 달 하순에는 화이트리스트 배제가 시행될 가능성이 있다.

정부 안팎에서는 이번 한·일 갈등 사태가 다음 달 15일 광복절 때 다시 한 번 중대 고비를 맞게 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와 이에 대한 일본 반응이 향후 국면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개각도 변수다. 아베 총리는 9월 중에 개각과 자민당 지도부 개편 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새 내각과 여당 지도부의 면면에 따라 한·일 갈등에 대한 일본 정부의 태도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

10월 22일로 예정된 일왕 즉위식도 주목되는 이벤트다. 일본으로서는 반세기 만에 맞는 중대한 정치 행사인 만큼 한·일 간 긴장 완화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화이트리스트 한국 제외 결정 이후에도 변수가 남아 있다. 일본이 얼마만큼의 규모와 강도로 규제에 나설 것이냐는 점이다. 일본의 수출 규제는 무역 흑자국이 적자국에 대해 수출을 규제하는 매우 이례적인 사례다. 따라서 일본 정부로서도 한국에 대해 모든 ‘수도꼭지’를 한꺼번에 다 잠글 수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우리 정부는 외교적 노력을 이어가되 최악의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대비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사태를 특히 부품·소재 산업 경쟁력 강화 기회로 삼겠다는 입장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상생형 구미 일자리 투자 협약식’에 참석해 “핵심 소재의 해외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국가적 과제인 지금 구미형 일자리 협약은 우리 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바라는 산업계와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