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러시아 군용기의 합동비행훈련을 두고 해외 언론들은 한·미·일 3국 안보협력 태세를 견제하려는 시도로 분석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 과거사와 수출 규제 문제로 갈등을 빚는 등 한·미·일 협력이 ‘약한 고리’를 노출한 상황에서 의도적으로 동해상 무력 시위를 벌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일은 러시아 군용기가 독도 인근 상공을 비행한 직후 독도 영유권 문제를 두고 설전을 주고받았다. 출구를 찾지 못하는 한·일 갈등에 기름을 끼얹은 셈이다.
미국 랜드연구소 제프리 호넝은 23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중국과 러시아가 우연히 같은 날 이런 일을 벌였을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힘들다”며 “문재인정부는 북한 비핵화를 위해 북한에 관여정책을 추진하는 반면, 일본과의 관계는 역사 문제 때문에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한국 정부의 이런 외교적 부담을 비민주적인 이웃국가들(중·러)이 악용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 군용기의 독도 영공 침범이 의도적인 행위일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칼 슈스터 전 미 태평양사령부 합동정보센터 작전국장은 CNN에 “한국 전투기가 경고사격을 한 건 이를 심각하고 고의적인 행위로 봤다는 뜻”이라며 “영공을 고의적으로 침범하겠다고 결심하지 않은 이상 경고사격을 받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피터 레이턴 그리피스아시아연구소 분석가는 “러시아는 이번 사건을 통해 한국 방공체계와 관련한 포괄적 정보를 얻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한·일 순방 기간에 맞춰 미국에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는 시각도 있다.
중국과 러시아 공군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처음으로 합동훈련을 실시한 점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지난해 동부 시베리아 지역에서 냉전 종식 이후 최대 규모 육상 군사훈련인 ‘보스토크 2018’을 공동 실시한 바 있다. 최근 들어 중·러 간 군사협력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양국이 군사동맹에 준하는 관계에까지 이르렀다는 평가도 나온다.
아르촘 루킨 극동연방대 교수는 CNN에 “중·러 관계는 ‘준동맹(quasi-alliance)’이라고 칭할 정도까지 발전했다”며 “중·러 공동의 역량을 한·미·일에 과시하겠다는 의도로 계획된 것”이라고 말했다. 조너선 마커스 BBC 군사전문기자는 “중·러 군사협력이 어디까지 왔는지 보여주는 강력한 신호”라며 “이번 사건은 미국 대외전략에 큰 도전이 될 것이다. 특히 쇠락하는 러시아와 부상하는 중국이 손을 잡는 건 미국에 악몽과 같다”고 말했다.
중·러가 한·일 양국의 영공과 영해에 접근하며 대비태세를 시험하는 일이 더 잦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드미트리 트레닌 카네기센터 모스크바센터장은 트위터에 “중·러 군용기가 이런 식으로 합동비행을 하는 건 앞으로 다반사로 일어날 것”이라며 “중·러 협력 관계는 날로 두터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