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이 실현되는 게 영화” “내 영역을 넓혔다고 생각”

입력 2019-07-25 04:04
오는 31일 개봉하는 영화 ‘사자’에서 처음 호흡을 맞춘 배우 박서준(왼쪽 사진)과 안성기. 박서준은 “좋은 인생 선배를 만난 것 같다. 영화에서도 그렇지만 현실에선 더 아버지 같았다”고 회상했다. 안성기는 “박서준은 아직 나를 어려워할지 모르지만 내 입장에서는 매우 소통이 잘 됐다고 생각한다”고 웃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이 영화, 매우 독특하다. 표면적으로 오컬트 장르를 표방하는데 그 속에 유머도, 드라마도, 액션도 있다. 어찌 보면 히어로물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막강한 힘을 지닌 주인공이 조력자와 함께 악의 무리를 처단한다. 오는 31일 관객을 만나는 ‘사자’ 얘기다.

악을 쫓는 엑소시즘은 ‘검은 사제들’(2015) ‘곡성’(2016) ‘사바하’(2019) 같은 영화들에서 이미 여러 차례 다뤄졌다. 여러 장르를 혼합한 건 관객들에게 익숙해져버린 소재를 신선하게 풀어내고자 한 노력으로 읽힌다. 분명 새롭고 흥미로운 지점이 있으나, 비현실적 설정이 몰아치는 후반부에 들어서는 정체불명의 혼종으로 보이기도 한다.

제목은 신의 명령을 받은 자를 뜻하는데, 이 영화의 중심 소재는 악을 쫓는 구마(驅魔)다. 어릴 적 아버지를 잃고 세상에 대한 불신만 남은 격투기 챔피언 용후(박서준)가 어느 날 갑자기 손바닥에 생긴 의문의 상처를 발견하고 구마 사제 안 신부(안성기)를 찾아갔다가 그를 도와 검은 주교 지신(우도환)의 악행을 막기로 한다.

고도의 컴퓨터그래픽(CG)으로 완성한 액션신들이 강렬하다. 하지만 반복되는 구성과 늘어지는 전개가 보는 이의 긴장감을 뚝뚝 떨어뜨린다. 인상적인 건 용후 역의 박서준(31)과 안 신부 역의 안성기(67)가 보여주는 ‘의외의’ 콤비 플레이. 부자지간을 연상케 하는 두 사람의 다정한 호흡이 극에 숨통을 틔워준다. 이들을 24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각각 만났다.

두 사람의 극 중 모습.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따지고 보면 박서준은 기획 단계부터 합류한 셈이었다. ‘청년경찰’(2017)에서 인연을 맺은 김주환 감독과 뜻을 모아 차기작까지 함께하게 된 것이다. “감독님이 ‘어떤 역할을 해보고 싶냐’고 물으시기에 ‘웃음기 쏙 뺀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고 했더니, 본인이 준비하는 영화가 그런 느낌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됐죠.”

본인의 연기에는 유머러스함을 걷어냈지만 안성기와의 합에서 자연스러운 웃음이 빚어진다. 박서준은 “용후가 진지하지 않았으면 안 신부의 대사에서 웃음이 터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상황에서 오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안성기와의 호흡은 실제로도 두말할 나위 없었다. 평소 자기 관리가 철저한 그의 일상을 곁에서 지켜보며 깊은 존경심도 느꼈다.

영화에서 박서준은 판타지 액션을 펼쳐 보인다. 불이 뿜어져 나오는 손으로 상대를 제압하는데, LED를 부착한 채 촬영하고 추후에 CG를 입힌 것이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실 수도 있지만, 상상이 실현되는 게 영화잖아요. 저부터 불편함 없이 받아들이려 노력했습니다.”

엑소시즘이란 소재에 대한 호불호가 갈릴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다. 박서준은 “다만 우리 영화는 엑소시즘에만 집중하지 않고 다양한 볼거리를 갖추고 있다”면서 “전체적으로는 아닐지 몰라도, 분명 당신의 취향 하나쯤은 들어가 있을 것이라고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똑같은 걸 또 하고 싶지 않다”는 박서준은 “매번 도전하는데 늘 100% 만족한 적은 없다. 다만 최선을 다한다. 그 부분에 대해선 저 자신에게 고생했다고 얘기해주고 싶다”고 했다. ‘사자’ 시즌 2가 나오면 출연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무조건 해야죠”라며 웃었다.

안성기에게 오컬트는 낯선 장르였다. “이런 소재의 영화는 굳이 보지 않았어요. 원체 무서운 영화를 못 보거든요. 어릴 적 드라큘라 영화를 보고 그 여파에 한동안 시달렸던 기억이 있어요. 다행히 출연하는 건 무섭지 않더라고요. 프레임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다 아니까(웃음).”

데뷔 62주년을 맞이한 그는 새로운 도전에서 뜻밖의 즐거움을 얻었다. 안성기는 “그동안 내게 제안이 오는 역할은 대부분 진지한, 보통의 사람이었다. 이번 작품은 캐릭터적인 성격이 강하지 않나. 나의 활동 영역을 조금 더 넓혔다는 생각이 든다”며 만족해했다.

“마침 큰 영화를 하고 싶던 참이었어요. 최근 독립영화를 연달아서 하다 보니 ‘좀 더 많은 사람이 즐겁고 신나게 볼 수 있는 영화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사자’가 딱 그런 영화구나 싶었어요. 김 감독이 처음부터 안 신부 역에 저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것도 고마웠고요.”

어느 현장에서든 최고참이다. 까마득한 후배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는 건 먼저 다가가려는 그의 노력 덕분이다. “최대한 좋은 분위기를 만들려고 해요. 제 심성이 부드러운 편이라 다행히 후배들도 편하게 생각해주죠. 그런 관계가 작품에도 영향을 미치거든요. 누를 끼쳐선 안 되죠.”

극 중 안성기는 벽으로 내던져지는 등의 고강도 액션을 소화한다. 운동이 생활화돼 있는 터라 체력적인 어려움은 없었다. 안성기는 “내가 좋아하는 현장에서 행복하게, 오래 일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운동을 한다. 다양한 역할을 맡으려면 체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전히 현역에서 뛰는 건 좋은 본보기로 남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기도 하다. “로버트 드니로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나이 들어서도 활발히 활동하는 외국 배우들을 보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 세기를 지나가는 선배로서의 사명감이 있죠. 제 에너지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요(웃음).”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