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날 두 도시서 목격된 살해 용의자… 그는 진짜 범인일까

입력 2019-07-27 04:01
범인이 도플갱어였던 것일까. 스티븐 킹의 신작 ‘아웃사이더’에는 동시에 두 장소에서 목격된 용의자가 등장한다. 게티이미지 제공

끔찍한 살인이었다. 살인범은 열한 살 소년을 납치해 아이의 목을 물어뜯어 살해했다. 사체에는 정액까지 마구 뿌려놓았다. 사건 현장엔 “사적인 감정이 결부돼”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미치광이가 저지른 흉악 범죄. 그렇다면 범인은 누구인가. 수사당국은 금세 살인범의 정체를 파악했다. 어린이 야구단 코치이자 교사인, 동네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남성 테리였다.

경찰 랠프는 동료들과 경기가 한창이던 야구장으로 갔다. 관중 15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테리를 체포했다. 이렇게 노골적인 체포 작전을 벌일 수 있었던 건 테리가 범인이라는 증언과 증거가 수두룩해서였다. 사건 당일 그가 소년을 차에 태우는 걸 봤다거나, 테리가 살인이 벌어진 숲에서 피투성이로 걸어 나와 동네를 돌아다녔다는 목격담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범행 도구에선 테리의 지문까지 나왔다. 그렇다면 모두 끝난 이야기 아닌가. 하지만 변호사는 테리와 이야기를 나눈 뒤 경찰과 검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이고, 이를 어쩌나. 두 분 아주 골치 아프게 됐네요.”


‘아웃사이더’(전 2권)는 미국 작가 스티븐 킹(72)이 펴낸 장편소설이다. 알려졌다시피 스티븐 킹은 지금까지 3억5000만부 넘는 책을 팔아치운 세계 출판계의 슈퍼스타다. 많은 사람은 그의 이름 앞에 ‘이야기의 제왕’ ‘스릴러의 대가’ 같은 수식어를 붙이곤 한다.

스티븐 킹은 많은 작품에서 평화롭던 일상을 공포의 공간으로 바꿔놓은 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야단법석을 흥미롭게 그려내곤 했다. 그리고 이런 솜씨는 신작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아웃사이더’는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되자마자 세계 20여개국에 판권이 팔렸다. 미국에서는 10부작 드라마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그렇다면 소설 속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테리의 변호사가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인 건 테리의 결백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가 있어서였다. 테리는 사건 당일 다른 도시에 있었다. 동료 교사들과 학회에 참가했다. 유명 소설가의 강연을 들었다. 동료들과 저녁도 먹었다. 경찰로서는 설상가상으로 이를 증명하는 동영상까지 나온다. 영상 속에서 테리는 강연이 열리던 행사장에 앉아 있었다. 심지어 강연 중간엔 손을 들고 질문까지 했다. 변호사는 말한다. “우리 쪽 증거가 그들 쪽 증거를 압도한다”고.

아울러 테리가 행사장 인근 서점에서 들었나놓은 책에는 그의 지문까지 찍혀 있었다. 그렇다면 범인은 누구란 말인가. 사건 당일 주민들이 동네에서 목격한 피투성이 테리는 유령이었던 것일까. “세상에 중력처럼 견고하고 바위처럼 단단한 사실이 하나 있다면, 누구라도 같은 시각에 두 군데의 장소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건은 끝 모를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1권과 2권을 합치면 800쪽 가까이 되는 작품인데 200페이지쯤을 지날 때면 이미 상황은 정리돼버린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스티븐 킹이 누구던가. 진짜 으스스한 이야기는 이때부터 펼쳐진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히 소개할 수 없는 걸 양해해주시길. 하나만 귀띔하자면 작가의 전작인 ‘빌 호지스 시리즈’에서 은퇴 형사 빌 호지스의 조력자였던 홀리 기브니가 1권 말미쯤에 등장한다. 작가의 팬이라면 이 지점에서 짜릿한 반가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스티븐 킹이 첫 장편 ‘캐리’를 발표한 게 1974년이었으니 그가 세상에 이름을 퍼뜨리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45년이 됐다. 그는 50편 넘는 장편, 200편을 웃도는 단편을 통해 화수분처럼 이야기를 쏟아냈다. 수준급의 작품을 통해 지구촌 독자들을 열광케 만들었다.

누군가는 그를 얄팍한 대중소설을 쓰는 작가라고 낮잡아보겠지만 그의 작품을 눈여겨본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할 순 없을 것이다. 스티븐 킹이 2003년에 받은 전미도서상은 그가 일급의 소설가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슈퍼맨 가슴팍에 새겨진 S만큼이나 강력한 알리바이”였다. 그는 전미도서상 수상 당시 자신처럼 대중적 인기는 누렸지만 문단에서는 시큰둥한 이야기만 들어야 했던 존 그리샴, 톰 클랜시 등의 이름을 거론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들의 작품을 읽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잘난 척하는 작가들에 대해서는 언급할 가치도 없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