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위 격화 홍콩에 계엄령 선포할 수도

입력 2019-07-24 04:03
21일 홍콩 도심에서 범죄인 인도법(송환법)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가운데 중국 중앙정부를 대표하는 기관인 중앙인민정부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 앞의 중국 국가 휘장이 시위대에 의해 훼손돼 있다. 홍콩=AFP연합뉴스

중국이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가 격화되고 있는 홍콩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는 등 강력 대응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중국 관영언론들도 시위대의 홍콩 주재 베이징 연락사무소 공격을 부각하며 적극적으로 ‘반(反)중 대 친(親)중’ 가르기에 나서고 있다. 중국 정부가 시위대 진압의 명분 쌓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3일 시위대가 홍콩 내 중국 연락사무소를 공격한 것에 대해 중국 본토 여론이 악화되고 있다며 이 같은 전망을 내놨다. 앞서 일부 홍콩 시위대는 지난 21일 연락사무소 밖에 내걸린 중국 국가 휘장에 검은색 페인트를 뿌리고 계란을 투척했다. 건물 벽에는 검은색 스프레이로 반중 구호를 쓰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모욕하는 낙서를 하기도 했다.

연락사무소는 홍콩에 대한 중국 중앙정부의 영향력을 상징하는 시설이다. 시위대가 이 건물을 직접 겨냥해 공격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국 가디언은 이 장면을 “1997년 홍콩 주권 반환 후 중국 당국의 권위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도전”이라고 평했다.

중국 관영언론들은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홍콩 시위대 비난에 나섰다. 하지만 같은 날 밤 홍콩 위안랑 전철역에서 흰색 상의에 각목과 쇠파이프를 든 수십명의 남성들이 시위대를 무차별 폭행한 ‘백색 테러’에 대해선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이 남성들이 홍콩 경찰과 유착 관계이며 배후에 친중파가 있다는 홍콩 언론의 보도와 달리 시위대의 과격성에만 초점을 맞춘 보도만 이어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날 과격해진 홍콩 시위의 배후에 미국·영국 등 서방세력이 있다며 외부 세력 개입설까지 제기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미국은 홍콩에 뻗은 그들의 검은손을 조속히 거둬들일 것을 권고한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와 관영언론의 전략은 실제 먹혀들고 있다. 홍콩 시위에 대한 중국 본토 여론이 악화되며 시위 반대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중국의 한 누리꾼은 SNS에 “시위대의 행동은 정상 범주를 넘어선 것”이라며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폭력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글은 웨이보(중국판 트위터)를 통해 확산되며 큰 반향을 얻었다.

SCMP는 중국 정부가 본토 여론을 명분 삼아 강경책을 쓸 수 있다고 전망했다. 톈페이룽 중국 베이항대 부교수는 “본토의 부정적 여론이 강경파의 입지를 넓혀주면서 중국 정부가 홍콩 시위에 더욱 강경한 노선을 취하도록 부추길 수 있다”며 “상황이 악화되면 중국 정부는 홍콩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본토법을 적용하는 등의 방향으로 상황을 정리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본토법이 적용될 경우 홍콩에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하기로 한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 원칙이 무너지며 홍콩의 자치권이 심각히 훼손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홍콩 기본법 18조를 근거로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이 조항은 홍콩 정부가 통제를 벗어날 정도의 혼란으로 국가의 단합이 위협받을 경우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결정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음 달 초 중국 최고지도부가 여름휴가를 보내며 주요 정책을 논의하는 연례 비밀회동 베이다이허회의는 홍콩 사태의 중요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 SCMP는 “베이징 지도부는 이번 회의에서 홍콩 시위에 대한 대응책을 집중 논의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