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군용기 1대가 23일 독도 영공을 하루에 두 차례나 침범했다. 외국 군용기가 한국 영공을 침범한 것은 처음이다. 우리 공군 전투기는 영공 침해를 저지하기 위해 360여발 경고사격을 실시했다. 영공은 해안에서 바다로 약 22㎞(12해리) 떨어진 영해와 영토의 상공을 의미한다. 국제법상 주권이 보장되는 곳이다. 이날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 각각 2대는 또 처음으로 편대비행하며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무단 진입해 독도와 울릉도 사이를 비행했다.
러시아와 중국이 감행한 초유의 영공 침범과 편대비행은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연합 공중훈련으로 분석된다. 한·미·일 삼각 안보 협력을 통해 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미국을 겨냥한 군사적 액션으로도 해석된다. 청와대는 “이런 행위가 되풀이될 경우 훨씬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라고 러시아 측에 항의했다.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가 KADIZ에 진입한 사례는 많지만 영공을 침범하거나 중·러가 함께 편대비행한 것은 처음이다. 이날 독도 영공을 두 차례 침범한 러시아 항공기는 A-50 조기경보통제기다. 조기경보통제기는 전투기 작전을 지휘하거나 공중 감시가 가능한 전력이다. 편대비행에 나선 군용기는 중국 H-6 폭격기 2대와 러시아 투폴레프(Tu)-95 폭격기 2대였다. 이들 4대는 편대비행 도중 영공을 침범하지는 않았다.
이날 러시아 조기경보통제기는 작정한 듯 두 차례나 영공을 침범했고, 중·러 폭격기는 관할 군 당국의 사전 허가를 받는 관례를 깨고 KADIZ에 무단 진입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각각 20여 차례, 10여 차례 경고통신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영공 침해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응해 중·러 간 군사적 밀착관계를 과시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중·러 군용기가 KADIZ를 헤집고 다니던 때 포항 동쪽 148㎞, 제주 남쪽 64㎞ 공해상에 중국 호위함 각각 1척이 머물렀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높은 수준의 군사 협력 관계에서만 가능한 연합 공군훈련을 실시하면서 미국을 견제하는 모습을 연출한 것”이라고 말했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방한하는 날에 맞춰 공격적인 비행훈련을 실시한 점도 예사롭지 않다. 일각에서는 북한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단과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 중단이라는 쌍중단 상황을 노린 의도적 도발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반도로의 전략자산 전개가 사실상 중단되는 등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이 약화된 틈을 전략적으로 파고들었다는 해석이다.
러시아 군용기가 극도로 악화된 한·일 관계를 감안해 일본이 자국 영토라고 억지를 부리는 독도 영공을 의도적으로 침범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군 소식통은 “한·미·일 안보 균열에 맞대응하는 고도로 계산된 중·러 연합훈련이 전개된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러시아에 엄중 항의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러시아 연방안보회의 서기 파트루셰프에게 ‘우리는 이 사태를 매우 엄중히 보고 있으며 이런 행위가 되풀이될 경우 훨씬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이다. 연방안보회의에서 상황을 파악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청한다’는 강력한 항의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국방부는 성명을 통해 “러시아 군용기는 한국 영공을 침범하지 않았다. 오히려 러시아 군용기가 한국 전투기로부터 위협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