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보기에 요즘 가장 밥값을 못하는 곳이 국회다. 어렵사리 정상화한 6월 임시국회는 빈손으로 끝났다. 여야는 연일 국회 공전의 책임을 떠넘기며 설전 중이다. 국회에 한랭전선이 드리워져 있을 때, 그나마 대화의 물꼬가 트이는 자리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있다. 문 의장은 여야 원내대표를 한자리에 모으고, 상임위별로, 선수별로, 수시로 여야 의원의 만남을 주선한다. 그가 강조해온 협치의 기본은 상호 신뢰와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정치 문화인데, 이를 위해선 우선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취임 1주년을 맞아 23일 국회 의장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문 의장은 정치권이 총체적으로 달라질 것을 주문했다. 문 의장은 현 정치상황에 대해 “총체적인 정치 실종 상태, 정치적 리더십이 붕괴된 상태”라고 진단하며 “여야 할 것 없이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어 “국회는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고 출신 지역, 직업, 세대가 모두 다른 사람들이 말로 싸우는 곳인데 지금은 막말로만 싸운다”며 “예전엔 당 부대변인도 입에 올리기 거북해하던 말들을 요즘은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SNS를 통해서 발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를 언론이 그대로 받아적고 다시 국민이 좋아하는 상황인데, 누군가 제동을 걸고 성찰하고 반성해야 할 시기가 딱 지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만난 사람=손병호 정치부장
-20대 국회 하반기 국회의장이 된 후 여야 대치가 극심했다. 물리적 충돌까지 빚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전체 국력, 모든 국민을 하나로 묶는 작업을 국회가 해야 하는데 제 역할을 못 하고 있어 참담하다. 가장 큰 원인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 전부 아니면 전무가 되는 승자독식 구조다. 현행 헌법 체제에서 ‘올 오어 낫싱’ 게임으로 갈 수밖에 없는 정치 문화가 문제다. 죽기 살기로 정권을 잡으려 하고, 떨어지면 그 다음 날부터 다음 정권을 잡기 위해 상대를 헐뜯고 밟아야 산다는 이분법에 빠져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개헌을 해야 한다.”
-지난 제헌절 때도 분권형 개헌을 강조했다.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로 바꾸면 권한의 대부분이 국회로 오게 되는데 현재 국민은 국회를 신뢰 못하고 있다. 그러니 현행 헌법 테두리 안에서 가능한 분권형 개헌은 총리를 국회에서 선출하는 것이다. 그게 어려우면 국회에서 복수로 2명을 추천하고 대통령이 선택하게 하면 된다.”
-20대 국회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개헌이 될 수 있겠는가.
“첫 번째 골든타임은 놓쳤다. 대통령이 제출한 개헌안을 국회에서 논의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야가 계속 끈을 놓지 않고 가면 21대 국회 때 기회가 다시 올 것이다. 21대 의원들이 들어오고, 대통령 임기가 2년 남은 상황이 개헌의 제2의 골든타임이다.”
-정치적 리더십과 정치 문화도 과거보다 못한 것 같다.
“정치적 리더십이 붕괴됐다. 의장을 포함해 여야 모두가 지금 성숙한 정치를 못하고 있다. 시중에서 왜 국회는 싸우기만 하냐고 하는데 그럴 때마다 국회는 원래 싸우는 곳이라고 얘기하곤 한다. 정치는 마키아벨리가 말한 것처럼 권력을 잡아야 하는 동시에 사회의 갈등을 조정하고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 지금 여야는 그걸 못하고 있다. 헌정사에 보면 노태우 대통령 시절, 4당 여소야대 국면에서도 성숙한 정치가 이뤄졌다. 도로 후퇴했는데 지금 이 순간 자성하면서 새로운 리더십을 세워가야 한다.”
-취임 후 여러 정치개혁을 시도해 왔다. 좀 더 손 볼 것은 무엇인가.
“정치개혁을 하려면 국회법 정당법 선거법 세 가지를 손봐야 한다. 국회법 개정이 필요하다.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패스트트랙도 생겼는데, 숙려기간이 긴 것을 짧게 해서 상시화하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인사청문회 제도도 고쳐야 한다. 청문회법을 고쳐 청와대와 인사 관련 부서에서 도덕성 등은 철저히 검증해서 그걸 통과한 사람을 추천하고, 국회에선 정책 청문회를 하면 된다. 반대하기 위해 무조건 물고 늘어져선 안 된다. 또 국회에서 반대하는데 대통령이 그냥 임명하는 것도 맞지 않다. 정당제도는 어느 정도 개혁이 이뤄졌으나 선거제도 개혁은 시급하다.”
-선거구제와 관련, 가장 현실적인 개편 방향은 무엇인가.
“선거제 개혁의 꽃은 득표수만큼의 의석이다. 현행 선거법에선 표심의 왜곡이 일어난다. 지난해 6·13 지방선거 당시 경기도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50%, 자유한국당이 25% 득표했는데 의석수는 민주당 128석, 한국당 1석이었다. 득표율만큼 의석수가 비례하도록 하는 게 옳다. 의원 숫자 늘리는 건 전 국민이 반대한다. 신뢰 회복이 병행돼야 한다. 전체 예산을 동결하는 전제하에 의원 수 10%를 늘리자는 게 내 제안이다. 지역구 이외에 100석을 정당 지지율에 비례해 안배하면 된다.”
-의원외교 내실화에 각별한 힘을 쏟아 왔다. 한·일 문제 해결을 위한 구상은.
“달라진 국가 위상에 걸맞게 민족의 주체성을 앞세운 외교가 필요하다. 중진 의원들을 중심으로 전 세계를 12개 주요 권역으로 나눈 의회외교포럼을 출범시켰다. 한·일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의 주역은 대통령과 정부지만 국회의 역할도 있다. 방미단과 방일단을 통해 현 사태에 대한 우려를 담은 친서를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과 오시마 다다모리 일본 중의원 의장에게 전달토록 했다.”
-21대 국회의원에게 필요한 자질은 무엇인가.
“국제적으로 위기인 동시에 천재일우의 기회에 놓여있다. 국내적으로는 헌정사 속에서 촛불혁명 제도화라는 엄청난 시대적 과제가 있다. 이런 시대적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사람, 이를 이뤄낼 실력과 열정, 의지를 가진 사람이 와야 한다.”
-문희상에게 정치는 무엇인가.
“내 정치철학을 논어에 나오는 세 가지로 말하고 싶다. 첫째 무신불립(無信不立), 인간과 인간, 통치자와 피치자 사이에 신뢰가 없으면 공동체, 국가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두번째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다. 서로 다르지만 모여 화합하는 것게 민주적 리더십의 본체다. 마지막은 선공후사(先公後私)다. 나보다 당을, 국민과 민족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20대 국회는 정의로운 나라 만들라는 촛불민심을 제도화해 완성시켜야 한다. 마지막까지 이를 이루기 위해 사명감으로 버티고 있다.”
정리=김나래 신재희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