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장지영] 역사는 1등만 기억한다고?

입력 2019-07-24 04:03

“닐 암스트롱에 이어서 인류 두 번째로 달에 발을 디딘 사람을 알고 계십니까. 역사는 1등만을 기억합니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습니다.”

1990년대 초 삼성의 광고에서 달 착륙 영상과 함께 흘러나오던 유명한 멘트다. 이 광고는 당시 삼성을 이끌던 이건희 회장의 ‘일등주의’를 반영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삼성의 일등주의는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려던 한국 상황과 맞물려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를 무한 경쟁으로 몰고 가던 당시 한국에선 분야마다 순위를 매기는 일등 만능주의가 뿌리내리게 됐다.

최근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50주년을 맞아 삼성 광고가 오버랩된다. 일등주의가 글로벌 기업 삼성의 토대가 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허울뿐인 ‘최고’에 대한 집착을 낳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도전정신과 시행착오를 통한 발전이라는 과정을 무시하도록 만들었다.

삼성 광고 속 멘트와 관련해 인류 두 번째로 달에 발을 디딘 사람은 버즈 올드린이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과 관련된 사진 속 주인공이 바로 올드린이다. 달에 처음 발을 디딘 암스트롱이 많이 알려졌지만 대중에게 달과 우주 개발을 알린 것은 그의 공이 훨씬 크다.

지구 귀환 이후 암스트롱이 유명세에 시달리다 대학교수로서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했던 것과 달리 올드린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 홍보대사로서 우주 개발을 알리는 데 적극 나섰다. 그리고 그의 궤도역학 논문은 우주개발사에서 빼놓을 수 없으며 그는 NASA 후배들의 멘토로도 큰 역할을 했다.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에 나오는 캐릭터 ‘버즈’는 바로 올드린을 모델로 한 것이다. 그가 얼마나 대중에게 사랑받았는지 보여준다.

게다가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성공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니다. 61년부터 NASA가 인간을 달로 보내는 ‘아폴로 프로젝트’의 경험이 축적된 덕분이다. NASA의 첫 번째 유인 우주선인 아폴로 7호는 68년 발사 이후 260시간 동안 지구를 163회 돌면서 인간이 우주공간에 체류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또 달 궤도 진입과 이탈에 사용될 보조 추진 시스템과 엔진 분사 작동 실험에도 성공했다. 이어 아폴로 8호는 달 궤도에 진입했다가 지구로 돌아오는 데 성공했으며, 아폴로 9호는 달 착륙선과 사령선의 도킹 테스트 및 승무원들의 우주유영을 실험했다. 그리고 아폴로 10호는 달 착륙선이 사령선에서 분리해 달 표면으로부터 고도 15.6㎞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 사령선에 도킹했다. 그리고 아폴로 11호의 성공을 위한 경험에는 67년 첫 유인 비행을 위한 지상 훈련 중 화재로 승무원 3명이 사망한 아폴로 1호의 사례도 있었다.

미·소 우주경쟁에서 시작된 아폴로 프로젝트는 72년 아폴로 17호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정치적 명분이 사라진 데다 막대한 예산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화성, 명왕성, 소행성 등에 대한 탐사는 바로 아폴로 프로젝트의 성과가 축적된 덕분에 가능했다.

최근 다시 불붙은 달 탐사는 미국과 러시아의 양자 구도에 중국, 일본, 인도 등 신흥 국가들이 가세한 모양새다. 중국은 지난 1월 창어 4호를 세계 최초로 달 뒷면에 착륙시켜 주목받았다. 그리고 인도는 오는 9월 달 착륙을 목표로 지난 22일 찬드라얀 2호를 쏘아올렸다. 찬드라얀 2호 개발비용은 1670억원으로 할리우드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제작비 4120억원의 절반에도 못 미쳐 화제를 모았다. 여기에 블루오리진, 스페이스X 등 민간 기업들도 상업적 우주여행을 목표로 달 탐사에 뛰어들었다.

새로운 달 탐사는 단순 착륙이 아니라 수주일씩 장기 체류가 목적이다. 여기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몇 안 되는 1등이 아니라 수많은 2등과 실패가 있었던 덕분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류의 역사 속에 각인돼 있다.

장지영 국제부 차장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