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암시장서 1000만원 넘는 한국여권… 분실신고 쉽게 보다간 인터폴에 ‘큰코’

입력 2019-07-27 04:08
사진=게티이미지

유명 작곡가 겸 가수 돈 스파이크는 미국에 갈 때마다 출입국사무소에서 별도의 확인 작업을 받는다고 한 방송에서 밝혔다. 그는 과거에 강도에게 빼앗긴 여권이 누군가의 미국 불법 입국에 활용된 탓에 그런 불편을 겪고 있다고 했다. 이처럼 여권을 잃어버리면 이후 해외를 오갈 때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해 우리 국민의 여권 분실 건수는 15만건을 넘는다. 여권을 갖고 다닐 일이 많은 휴가철을 맞아 여권 관리의 중요성을 단단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상습 분실자는 경찰 조사도 받아

여권은 소지자의 국적과 신분을 증명하고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 문서다. 국내에서만 통용되는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등 여타 신분증과 달리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신분증으로서 중요성이 크다. 그러나 늘 지니고 다니는 국내용 신분증과 달리 여권은 해외여행 등 필요할 때만 사용하기 때문에 오히려 관리에 소홀한 경우가 많다.

외교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 국민의 여권 분실은 15만6702건에 달했다. 2014년 10만6147건에서 2015년 12만8274건, 2016년 14만2249건, 2017년 15만5429건으로 매년 늘었다. 우리 국민의 해외 왕래가 많아지면서 여권 분실 건수도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여권을 보관해둔 장소를 찾지 못하는 등의 본인 부주의로 인한 단순분실이 가장 많다. 최근 5년간 여권 분실 총건수(68만8801건) 가운데 단순분실이 82%를 차지한다. 우리나라보다 인구가 배 이상 많은 일본의 여권 분실 건수가 연간 4만건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우리 국민이 여권 관리를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권 분실은 분실자에게 여러 불편과 불이익을 주는데, 우리 국민은 너무나 쉽게 여권 분실신고를 하고 있다. 특히 출국하려고 공항에 오면서 여권을 집에 두고 왔다는 이유로 분실신고를 하고 긴급여권(유효기간 1년의 사진 부착식 단수여권)을 발급받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인천국제공항 여권민원센터에서 발급된 긴급여권 1만8551건의 발급 사유를 보면 여권 유효기간 부족 36.1%, 분실 32.9%, 기간 만료 21.4%, 훼손 8.5%, 친지 사망 및 사건·사고 1.4% 순이었다.


여행에 나선 개인이 부주의로 기존 여권을 사용할 수 없어 긴급여권을 신청하고 발급받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긴급여권은 해외 체류 가족의 사건·사고 등 긴급한 상황에 한해 발급돼야 함에도 관련 법령의 미비로 신청 부적격자에 대한 합리적인 대응이 어려운 실정이다.

여권 분실신고를 하면 기존 여권은 즉시 무효화된다. 뒤늦게 찾아도 분실신고된 여권은 사용할 수 없다. 이후 경찰청을 통해 분실 여권의 정보가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에 공유된다. 이 공유 조치로 인해 해외 출입국 시 별도의 확인 작업을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길 수 있다.

또 여권을 5년 내 3회 분실하면 상습 분실자로 분류된다. 상습 분실자는 유효기간이 제한된 여권을 발급받으며, 경찰청의 경위 조사 대상이 된다. 분실한 여권이 불법 입국 등 범죄에 활용될 여지가 있기 때문에 경찰 조사를 받는 것이다. 한국 여권은 국제 암시장에서 1000만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여권 파워는 세계 2위

전 세계 여권의 파워를 조사하는 헨리 패스포트가 최근 발표한 올 상반기 여권 파워 순위를 보면 일본 싱가포르가 1위, 한국 독일 핀란드가 2위다. ‘세계에서 가장 여행하기 좋은 여권’ 리스트에서 한국이 2위를 차지한 것이다.

헨리 패스포트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데이터를 기반으로 특정 국가 여권 소지자가 비자 없이 방문할 수 있는 국가의 수를 합산하는 방식으로 순위를 매긴다. 1위인 일본과 싱가포르는 비자 없이 여권만 있어도 189개국을 여행할 수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과 독일, 핀란드는 무비자로 입국 가능한 국가가 187개국이다.

무비자로 방문할 수 있는 국가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의 대외 신뢰도가 높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권 분실 건수가 가파르게 증가할 경우 우리 여권에 대한 신뢰도가 저하돼 무비자 방문 가능국이 줄어들 수도 있다. 일부의 부주의로 인한 실수가 국민 전체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또 사소한 낙서가 여권 훼손으로 간주돼 출입국이 불허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훼손 정도의 판단은 개별 국가 몫이기 때문에 소지자는 여권에 작은 낙서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윤희찬 외교부 여권과장은 26일 “출국 전 여권에 이상이 없는지, 유효기간은 얼마나 남았는지 미리 확인할 필요가 있다. 여권의 작은 훼손도 해외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체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년부터 발급되는 차세대 전자여권. 왼쪽부터 일반여권(남색), 외교관여권(적색), 관용여권(진회색). 표지 디자인과 색상은 온라인 선호도 조사와 정책 여론조사 결과를 반영해 결정됐다. 외교부 제공

내년부터 차세대 여권 도입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에 따른 여권상 성명은 단순 변심을 이유로는 변경이 어렵다. 표기 변경은 실질적인 개명이기 때문이다. 또 여권의 성명 표기가 일관성 있게 유지돼야 국제신분증으로서 기능할 수 있다는 게 외교부의 설명이다.

외교부는 내년부터 보안이 한층 강화된 차세대 전자여권을 도입할 예정이다. 지난해 말 공개된 차세대 전자여권 디자인은 큰 호평을 받았다. 기존 여권 소지자가 차세대 여권으로 바꾸고 싶다면 기존 여권을 반납하고 잔여 유효기간이 부여된 여권이나 신규 여권을 받으면 된다. 차세대 여권을 받겠다고 기존 여권 분실신고를 하면 안 된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