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갈등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양국 방문길에 오른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22일 일본을 먼저 찾았다. 그는 23일부터 1박2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한다.
볼턴 보좌관이 일본·한국 연쇄 방문에서 양국 간 갈등 해결을 위해 모종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데 이견은 없다. 그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를 한·일 양국에 전할지도 관심사다.
볼턴 보좌관은 22일 도쿄에서 일본 측 카운터파트인 야치 쇼타로 국가안보국장, 고노 다로 외무상, 이와야 다케시 방위상과 개별적으로 회담을 가졌다. 볼턴 보좌관은 이들과의 회동에서 한·일 관계와 호르무즈해협을 지나는 민간 선박 보호 연합체 동참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도통신은 볼턴 보좌관과 고노 외무상이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따른 한·일 간 긴장 고조에 대해 논의했다고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청와대는 볼턴 보좌관이 방한 기간 카운터파트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 정경두 국방부 장관을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볼턴 보좌관이 단독으로 한국을 찾는 것은 지난해 3월 취임 이후 처음이다. 볼턴 보좌관의 한·일 방문에는 매슈 포틴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태평양담당 선임보좌관이 동행했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21일(현지시간) “볼턴 보좌관의 이번 방문은 다목적용으로 보인다”면서 “그는 한·일 갈등의 물밑중재에 나서면서도 양국에 미국과 이란의 충돌로 화약고가 된 호르무즈해협의 민간 선박 보호에 동참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볼턴 보좌관의 한·일 출장 서류 파일에는 3가지 의제가 담겨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최우선 미션은 한·일 갈등의 물밑중재다. 그러나 적극적인 개입보다 한·일 양국에 확전 자제를 요청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이날 한·일 관계에 ‘신뢰의 문제’가 있다며 “최대의 문제는 국가 간에 맺은 약속을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일 청구권협정과 위안부 합의 등을 거론하며 “약속을 한국이 일방적으로 깨뜨린 만큼 일본은 (한국이) 먼저 약속을 지켜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참의원 선거 이후에도 한국을 겨냥한 보복 제재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호르무즈해협의 민간 선박 보호 건도 미국에는 중요한 문제다. 볼턴 보좌관은 호르무즈해협 문제와 관련해 한국보다 일본에 더 강한 압력을 넣을 것으로 전망된다. 로이터통신은 일본이 세계 4위 석유 수입국이며 지난해 전체 수입량의 86%가 호르무즈해협을 거쳐 왔다고 지적했다. 볼턴 보좌관은 한국에도 호르무즈해협 보호 활동 동참을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미 비핵화 협상도 빼놓을 수 없는 의제다. 볼턴 보좌관은 한국 당국자들과 만나 한·미 연합훈련을 예정대로 다음 달 실시하면서도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 대책 마련에 몰두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에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연장 문제와 호르무즈해협 보호 활동 동참은 중요한 이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소미아가 파기될 경우 한·미·일 안보 공조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지소미아를 지렛대로 미국의 적극적인 중재 노력을 기대하고 있다. 미국의 호르무즈해협 보호 동참 요구에 대해선 파병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