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대표 퇴진을 둘러싼 바른미래당의 집안싸움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손 대표 재신임 여부를 묻는 내용의 혁신안을 최고위원회의에 상정하려는 비당권파와 이를 막으려는 당권파 간에 충돌이 빚어지면서 119 구급대가 출동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앞서 당내 갈등 수습을 위해 출범했던 혁신위원회도 손 대표 거취 문제를 논의하다 판이 깨진 터라 양측이 분당(分黨) 전초전에 들어갔다는 해석이 나온다.
손 대표는 2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비당권파 인사들이 혁신위원들을 만나 나의 퇴진을 종용했다는 의혹이 사실이라면 당헌·당규 위반이다. 절차를 거쳐 사실인지 아닌지 밝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손 대표 측근인 임재훈 사무총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유승민 전 대표가 주대환 전 혁신위원장을 만나 손 대표의 퇴진을 종용했다고 밝혔다. 조용술 혁신위원도 이날 유 전 대표의 측근인 이혜훈 의원이 자신에게 손 대표 퇴진과 관련해 외압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비당권파인 오신환 원내대표는 “당의 문제를 다루는 혁신위원과 중진 의원이 만나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 나도 여러 번 만났다”고 말했다. 이어 “진상규명을 하려면 나부터 하라”고 맞섰다.
회의가 비공개로 전환된 지 5분여 만에 회의장 안에서는 고성이 터져 나왔다. 지도부를 흔들려는 ‘검은 세력’이 누구인지 규명하자는 당권파와 혁신안 의결을 미룰 수 없다는 비당권파의 신경전은 급기야 육탄전으로 번졌다. 혁신안 상정을 요구하는 비당권파 인사들이 회의장을 떠나려는 손 대표를 막아서면서 양측 사이에 고성이 오갔고 몸싸움으로 이어졌다. 비당권파는 손 대표 측을 향해 “양아치는 정치하면 안돼” “개XX 나이를 헛먹었다” 등의 원색적인 욕설을 쏟아냈다. 이 과정에서 혁신안 의결을 주장하며 단식투쟁 중이던 권성주 혁신위원이 쓰러져 119 구급대에 실려갔다. 소동 후 기자들과 만난 오 원내대표는 감정이 북받친 듯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당 내부에서는 분당 수순에 돌입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사태 이후 당이 3개월째 집안싸움을 벌이고 있는 데다 혁신위 카드도 실패로 돌아가면서 양측 간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손 대표가 물러나는 것 외에는 갈등을 봉합시킬 마땅한 방도가 없고, 당직자들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른 상태여서 정기국회 전까지 손 대표 거취에 관해 어떤 방향으로든 결론이 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한 초선 의원은 “분당은 이미 기정사실이나 다름없다”며 “어느 쪽이 어떤 모양새로 당을 나가느냐를 두고 치열한 수 싸움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달 말 귀국할 것으로 알려진 안철수 전 의원의 행보도 변수다. 당 일각에서는 바른미래당 창당 주역인 안 전 의원과 유 전 대표가 신당을 창당할 것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다. 안 전 의원과 유 전 대표가 당권 투쟁의 전면에 나설 경우 현 지도부의 구심력이 급격히 약해질 수 있다.
또 탈당설이 나오는 바른미래당 내 호남계 의원들과 제3지대 신당 창당 작업에 들어간 민주평화당 내 비당권파 세력의 움직임에 따라 이합집산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어떤 시나리오로 상황이 전개되든 바른미래당이 지금과 같은 ‘한 지붕 두 가족’ 형태를 유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심우삼 김용현 기자 s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