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 기자 성기철의 수다] 술, 취하지 말라했건만

입력 2019-07-23 04:06

애주가들 결국 효능 한계 고백
과음, 영혼 육신 한꺼번에 파괴
종교적 신념이면 술 강권 못해
간헐적 단주와 절주 목표 세워


1990년대 모 중앙부처에서 있었던 일이다. 새 장관이 부임해 실국장급 간부 약 20명이 환영 만찬에 참석했다. 내무관료 출신으로 화끈한 성격에 두주불사로 소문난 장관은 좌정하자마자 폭탄주(맥주에 위스키를 섞는 술)를 돌리기 시작했다. 각자 인사말과 함께 순조롭게 돌아가던 술잔이 갑자기 멈춰섰다. 말석에 앉은 A국장이 “장관님, 저는 좀 봐 주십시오”라며 마시지 않겠다고 해서다. 일순 참석자들의 시선이 A국장에게 모아졌다.

“아, A국장은 술을 못 마시는건가요?” “예 저는….” “에이, 그래도 장관이 새로 왔는데 축하하는 의미로 내가 제조한 것 딱 한 잔만 받지 그래.” “죄송합니다만 제가….” “딱 한잔만 하시라니까.” “예, 죄송합니다.” “허허, 이 양반 별일일세. 그런데 술은 왜 안 하시나요? 어디 건강이라도….” “아닙니다, 장관님. 저는 교회를 다녀서요.” “아, 그래요. 진작 그렇다고 말씀을 하시지. 그럼 패스.”

이 장면은 한동안 관가의 화제였다. 술을 거리낌없이 강권하던 시기, 장관 첫 대면 자리에서 당당하게 술잔을 거절한 A국장은 이후 술에 관한한 ‘자유인’이 됐다.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마시지 않겠다는데 누가 강권할 수 있겠는가. A국장은 업무능력이 뛰어나고 대인관계도 원만해 술을 마시지 않으면서도 공직에서 승진을 하고, 큰 공공단체에서 중요한 보직을 맡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사회생활을 하며 술을 피하기는 참 힘들다. 회식문화, 접대문화가 건재하기에 못 마시거나 안 마시는 사람에겐 여간 고역이 아니다. 호탕하게 잘 마시는 사람은 대인관계나 대외업무에 편리한 반면, 안 마시는 사람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술은 분명히 장단점이 있다. 담배처럼 백해무익하다는 말을 나는 하고 싶지 않다. 술은 신의 선물인 동시에 악마의 유혹이며, 백약의 으뜸이기도 하지만 만병의 근원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술은 교제와 잔치에 도움이 되며, 문학과 예술 발전에 일정 부분 기여한다고 믿는다. 가끔씩 절제해서 마시면 몸에 이로울 수도 있다. 동의보감에는 심혈관질환과 울혈증 등에 술을 중요한 약재로 처방한다.

성경에서 술에 취하지 말라 했을 뿐 입에 대지도 말란 얘기를 하지 않은 것은 이런 요소를 고려했기 때문 아닐까 싶다. 예수 그리스도가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걸 첫 번째 기적으로 삼았으며, 돌아가시기 전날 포도주로 성찬식을 한 사실에 비춰볼 때 그 자신 포도주를 즐겼을 것 같다.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가르친 공자도 술을 곧잘 마신 것으로 기록돼 있다.

시선(詩仙)이자 주선(酒仙)이라 불리는 이백은 “하늘이 만약 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술별(酒星, 주성)이 하늘에 있지 않을 거라네. 땅이 만약 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술샘(酒泉, 주천)이 땅에 있지 않을 거라네. 하늘과 땅이 이미 술을 사랑했으니 나 술을 사랑하는 것 하늘에 부끄러울 것 없네”라고 노래했다. 술을 예찬한 월하독작(月下獨酌)이란 시다.

하지만 ‘영원한 술꾼’인 그에게도 술이 만사 해결책으로 생각되진 않았던 모양이다. 이백은 ‘선주에서 이운을 전별하며’란 시에서 “칼을 뽑아 물을 베어도 물은 다시 흐르고, 술잔 들어 근심을 씻으려 하나 근심은 다시 솟는다”고 했다. 가수 장혜진, 윤민수가 최신곡 ‘술이 문제야’에서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며 한잔, 그를 잊고자 한잔 술을 마신다고 노래하지만 이별의 아픔은 오히려 더 깊어지는 듯하다.

평생 술을 찬미하며 즐기다 2년 전 단주(斷酒)를 선언한 최명(‘술의 반란’ 저자,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역임)은 이렇게 말한다. “술을 마시고 생기는 용기는 만용이요, 술을 마시고 생기는 관용은 거짓이다. 술을 마시고 수치심을 잊는다면 그것은 인간성의 아름다움을 잊는 것이요, 술을 마시고 시름을 잊는다면 그것은 찰나적 사고의 발로이다. 또 술을 마시고 얻는 호연지기는 ‘맹자’를 읽지 못한 사람의 이야기다. 술은 사람에게서 냉정과 침착을 빼앗고 판단력을 약화시킨다. 술은 사람의 정신기능에 이상을 초래하는 이상한 물건이다.”

적당히 마시는 술이야 크게 나쁘지 않겠지만 상습적으로 과하게 마시는데 따른 폐해는 자못 심각하다. 실언, 성범죄, 가정폭력, 음주사고, 질병 등으로 자신과 이웃의 영혼, 육신을 깡그리 파괴하기 일쑤다. 우리나라에서 음주로 인한 연간 사망자가 4000명이 넘는다. 아나운서 김모씨의 여성 몰카 사건, 탤런트 강모씨의 성폭행 사건도 과음과 무관치 않다고 본다. 성경은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고 했다. 동시에 술 취함과 그 결과들을 죄로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 수많은 사람이 오늘도 술에 젖어 산다.

기독신자인 나도 다를 게 없다. 음주에 비교적 관대한 유교집안에서 자라, 신문기자 생활을 해온 탓이라지만 핑계일 뿐이다. 고교 졸업과 함께 입에 대기 시작한 술을 식도궤양으로 2개월 끊었을 때를 제외하고 줄곧 마셨으니 음주력 어언 40년이다. 건강 걱정에다 ‘취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따르고자 절주(節酒)를 여러차례 시도해봤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또 다짐해본다. 솔직히 현재로선 영구적 단주엔 자신이 없다. 간헐적 단주를 겸한 절주가 목표다. 보름 전, 생애 첫 자발적 단주를 시작했다. 지금껏 지키고 있으니 ‘1개월 단주’라는 1차 목표의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술에서 조금이라도 해방되면 저녁시간을 운동과 독서로 알차게 보낼 수 있을 텐데…. 지인들이 “꿈도 야무지네”라고 비아냥할까 두려운 건 어쩔 수 없다.


성기철 경영전략실장 겸 논설위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