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지금까지 우리는 가전 전자 반도체 조선 등 많은 산업 분야에서 일본의 절대 우위를 하나씩 극복하며 추월해 왔다”며 “우리는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보복에 나선 일본 정부에 대한 직접 비판 대신 산업경쟁력 강화와 국민 단결을 촉구한 것이다. 23일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방한과 23~24일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 회의, 24일이 시한인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가) 한국 배제 의견수렴 결과 등 주요 외교적 고비를 앞두고 숨 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세계 경제의 여건이 악화되고 일본의 수출 규제까지 더해져 국민들께서 걱정이 많으실 것”이라며 “정부는 외교적 해결 노력과 함께 단기적 대책과 근본적 대책을 면밀히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자유무역질서를 훼손하는 기술패권이 국가 경제를 위협하는 상황에 있어서도 신기술의 혁신 창업이 중요하다”며 “특히 부품·소재 분야의 혁신 창업과 기존 부품·소재 기업의 과감한 혁신을 더욱 촉진하고자 한다. 이 분야에서도 강소기업들이 출현하길 기대한다”고 했다. 일본을 겨냥해 ‘기술패권’을 언급하면서 부품·소재 산업 경쟁력 강화와 제조업 혁신을 강조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또 한국의 관광수지 적자가 132억 달러(약 15조6000억원)에 이른다면서 “수출 부진을 만회할 수 있는 길은 국내 소비와 관광을 활성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5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향해 “결국에는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임을 경고해 둔다” “대단히 현명하지 못한 처사”라고 맹비판했다.
당시 발언과 비교하면 이날 발언은 상당히 절제된 표현이다. 미국의 중재 노력이 이뤄지고 있고, 국제사회의 압박을 통한 외교적 해결을 꾀하려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는 않겠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화이트리스트 배제 결정 움직임을 앞두고 일본을 먼저 자극하지 않겠다는 포석으로도 읽힌다.
다만 청와대 참모들은 일본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고민정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한국이 답을 가져와야 한다”는 취지의 아베 총리 발언에 대해 “한국이 제대로 된 답변을 가져오지 않으면 건설적 논의가 되지 않을 것이라 말씀을 하셨던데, 그렇다면 지금까지 한국 정부가 제대로 된 답변을 안 했다는 이야기인지 묻고 싶다”며 “한·일 관계를 과거와 미래, 투 트랙으로 나눠서 가자는 우리의 입장은 누차 말해 왔다”고 했다. 이어 “지금 (일본이) 수출 규제와 관련해서 안보 문제라고 했다가, 역사 문제라고 했다가, 다시 또 안보 문제라고 했다가, 또 역사 이슈를 언급하고 있다”며 “한·일 양국의 미래 협력을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선을 지키며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양국민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수석·보좌관회의에 ‘일본회의의 정체’라는 책을 들고 참석했다. 일본 저널리스트 아오키 오사무가 쓴 이 책은 아베 총리 등 일본 우익의 뿌리를 파헤친 책이다. 조 수석은 이날도 페이스북을 통해 “한국의 일부 정치인과 언론이 한국 대법원 판결을 비방·매도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일지 몰라도, 무도(無道)하다”고 비판했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