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교토 애니메이션 건물에서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수십명이 숨지거나 다쳤다. 일본에서 화재로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한 건 18년 만에 처음이다.
교도통신과 NHK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18일 오전 10시35분쯤 교토시 후시미구 모모야마에 위치한 교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스튜디오 안팎에는 직원 70여명이 머물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 당국은 약 5시간 만에 불길을 잡았지만 33명이 숨지고 35명이 부상한 것으로 파악됐다. 중상자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층 규모의 건물 역시 전소됐다.
희생자들은 불길이 빠른 속도로 번지면서 미처 피하지 못하고 변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건물 2층과 3층을 중심으로 불길에 휩싸였으며 흰 연기가 치솟았다고 전했다. 폭발음이 들렸다는 증언도 있었다. 연기와 화염을 피하기 위해 2층에서 뛰어내리거나 건물 외벽에 매달리는 모습도 목격됐다고 요미우리신문이 전했다.
현지 경찰은 방화가 화재 원인이라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경찰은 방화범으로 추정되는 41세 남성의 신병을 확보했다. 목격자에 따르면 이 남성은 건물 1층 로비에 들어와 “죽어라”라고 외치며 바닥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 이 건물은 평소 카드키로 출입통제를 해왔지만 이날은 내빈 방문이 예정돼 있어 개방된 상태였다고 한다. 현장에서는 망치와 칼 등 흉기가 든 가방도 발견됐다. 범인 역시 발과 가슴, 얼굴에 큰 화상을 입어 중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범인이 교토 애니메이션과 어떤 관계였는지는 파악되지 않았다. 체포 당시 범인은 범행 동기를 묻는 경찰의 질문에 “표절이나 하고”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범인은 건물에서 100m쯤 떨어진 지점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목격자는 “10시30분쯤 인터폰이 울려 현관문을 열어봤지만 아무도 없었다”며 “집 주변의 주차장 쪽을 바라보니 화상을 입은 사람이 누워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화재 피해자로 보여 물을 뿌려주려 했는데 경찰이 그를 붙잡아갔다”며 “범인은 뚱뚱한 체격이었고 배에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범인이 의식을 회복한 뒤 범행 동기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그는 체포 당시 자신이 휘발유를 가져와 불을 붙였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근 주유소에서 인상착의가 유사한 남성이 20ℓ 물통 2개 분량의 휘발유를 구입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화재 이틀 전에는 이 남성이 현장 근처를 둘러보는 장면이 목격됐다.
교토 애니메이션은 1981년 창립한 업체다. 초기에는 하도급업체로 시작했으나 2000년대 들어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케이온!’ 등 한국에도 잘 알려진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며 크게 성장했다. 업체 측은 “회사에 대한 항의가 그동안 적지는 않았다”며 “특히 ‘죽어라’ 등 살인을 암시하는 메일도 있었다”고 밝혔다. 지난해 업체 홈페이지에 협박성 게시물이 올라와 경찰이 수사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서 화재로 다수의 사상자가 나온 것은 2001년 9월 도쿄 신주쿠 상가 화재로 44명이 숨진 이후 처음이다. 특히 방화로 인한 화재는 89년 헤이세이(平成) 시대 이래 최악의 참사라고 일본 경찰청이 밝혔다. 신주쿠 상가 화재 역시 방화로 추정되지만 범인이 붙잡히지 않으면서 지금까지도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