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진한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 7월 23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는 조문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고인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과 그리움으로 조문객들은 펑펑 눈물을 흘렸다. 고인은 바로 진보정치의 상징이었던 노회찬. 그는 호주제폐지법 장애인차별금지법 등을 발의하며 한국사회 가장자리에 놓인 사람들을 보듬으려 한 정치인이었다.
노회찬의 1주기를 앞두고 추모집 ‘당신은 정의로운 사람입니다’(인물과사상사·표지)가 출간됐다. 고인이 생전에 했던 인터뷰와 연설문에 앵커 손석희(사진), 고려대 교수 강수돌, 정의당 의원 김종대, 경제학자 우석훈 등의 회고담을 보탠 작품이다.
책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글은 손석희가 썼다. 그는 “한 사람에 대해서 그것도 그의 사후에 (JTBC 뉴스에서) 세 번의 앵커 브리핑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며 “노회찬이라는 사람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가를 한동안 고심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언급한 건 지난 4월 보궐선거 유세 현장에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내뱉은, “돈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분의 정신을 이어받아서야…”라는 발언이었다. 손석희는 이 말을 도마에 올리면서 이렇게 적었다.
“그 말은 파문에 파문을 낳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순간에 그 덕분에 한동안 잊고 지냈던 노회찬에 대한 규정 혹은 재인식을 생각해냈던 것입니다. 즉, 노회찬은 ‘돈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아니라 적어도 ‘돈 받은 사실이 끝내 부끄러워 목숨을 버린 사람’이라는 것. 우리는 세상을 등진 그의 행위를 미화할 수는 없지만 그가 가졌던 부끄러움은 존중해줄 수 있다는 것. …그렇게 해서 저의 동갑내기 노회찬에게 이제야 비로소 작별을 고하려 합니다.”
우석훈은 노회찬을 “늘 명랑하고 노력했던 사람”이라고 추억했다. 강수돌의 회고담도 비슷하다. “노회찬은 노동자의 친구답게 쉬운 말로 사람을 웃겼다”며 “온갖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도 위트와 해학으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고 회상했다. 김종대는 고인을 떠올리는 게 고통스럽다고 적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국회 본회의장에서 벌어지는 타락한 정치를 통해 ‘저것이 바로 노회찬의 죽음을 초래한 몸통’이라고 말해야 한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