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도체업체가 일본이 수출규제에 나선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 3종 가운데 불화수소를 중국 화학기업인 방훠그룹에서 공급받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산 핵심소재의 공급 중단 우려에 한국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대체 공급처 확보에 나선 것이다.
중국 상하이증권보 인터넷판은 16일 산둥성에 위치한 방훠그룹이 한국의 일부 반도체 회사에 불화수소를 납품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방훠그룹은 한국 반도체업체에 불화수소를 납품하기 위해 여러 차례 품질 검사 등을 거친 뒤 한국 기업과 정식 협력 관계를 맺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방훠그룹과 계약을 맺은 한국 반도체업체가 어느 회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은 17일 해당 보도를 인용해 이 같은 사실을 전하며 높은 관심을 보였다.
앞서 니혼게이자이신문 등도 삼성전자가 일본의 핵심소재 수출규제 강화에 대응해 일본산 외의 고순도 불화수소 품질 검증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중국, 대만, 한국산이 그 대상이다. 삼성전자 뿐만 아니라 SK하이닉스도 수출규제 강화에 대응해 불화수소 공급처 다변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러시아가 외교라인을 통해 우리나라에 반도체 제조용 고순도 불화수소 공급 가능성을 타진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신문은 삼성전자 관계자를 인용해 “삼성전자가 실제 일본산 이외의 제품 조달 여부를 판단하는 데 2~3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이지만, 한국 반도체업체의 일본 이탈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한국과 일본이 글로벌 무역 체인 안에서 긴밀히 묶여 상호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는 장기적으로 일본 산업계에도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다. 한국 기업이 일본 기업의 첨단 소재·부품을 수입해 가공한 뒤 고부가가치 완제품으로 만들어 전 세계에 수출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반도체가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6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흔들릴 경우 한국 회사들을 주 고객으로 삼는 일본 화학소재 업계도 덩달아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일본 정부의 대(對)한국 수출 규제가 결국 일본 기업에도 피해로 돌아갈 것이라는 전망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4일 자국 기업들이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의 핵심 소재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레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를 한국에 수출할 때 매번 당국의 심사를 받도록 규제를 강화했다. 3년 단위로 포괄적 허가를 내주던 것을 개별 수출 건마다 허가를 내주는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모두 일본 업체가 독점적인 세계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화학 소재다.
불화수소는 반도체 기판의 표면 처리에 쓰인다. 일본은 초고순도 불화수소 기술 분야에서 확고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이 기술에 대한 한국의 대일(對日) 수입의존도는 41.9% 정도다. 의존도가 90%가 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레지스트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