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사이의 증오나 적대감이 줄어들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일본인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전체적인 맥락을 알게 된다면 그런 감정들이 조금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믿음이 있었습니다.”
일본계 미국인 미키 데자키(36) 감독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파헤친 다큐멘터리 영화 ‘주전장’을 만든 이유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16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나 역시 위안부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았기 때문에 자료 조사를 하면서 접하게 된 모든 정보들이 놀라웠다”고 말했다.
그가 이 문제에 처음 관심을 가진 건 일본 우익의 실체를 마주하면서였다. 2007년부터 5년간 일본에서 영어교사로 일한 그는 ‘일본의 인종차별’에 관한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가 거센 공격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처음 보도한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도 자신과 비슷한 일을 겪었음을 알게 됐고, ‘우익은 왜 이렇게 위안부 문제에 민감할까’라는 의문을 품게 됐다. 이 영화 역시 지난 4월 일본 개봉 당시 우파 인사들로부터 상영중지 요청과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오는 25일 개봉하는 ‘주전장’은 국내에서 제작된 위안부 영화들과 결을 달리한다. 위안부를 지원하는 단체나 학자뿐 아니라 위안부의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 극우파(역사 수정주의자) 인사들까지 30여명을 인터뷰했다. 영화는 양측의 주장을 교차 배치해 극우파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는데, 첨예한 논리의 대립이 그야말로 ‘전장(戰場)’을 방불케 한다. 영화는 위안부 문제 이면에 깔린 역사적 배경으로까지 논의를 확장한다. 야스쿠니 신사와 천황 중심의 종교 ‘신토’ 숭배의 중심에는 극우 세력의 본산인 ‘일본회의’가 있고, 그들이 지원하는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활동으로 2012년 일본 중학교 교과서에서 위안부 관련 언급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여타 위안부 영화와 가장 큰 차이점은 피해자 증언을 최소한으로 실었다는 것이다. “현재 위안부 문제는 정치인이나 학자들의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게 되죠. 무엇보다 일본 사람들이 피해자들의 증언을 믿게 하기까지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최근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해 일본이 수출 규제 조치를 내린 것을 놓고 미키 감독은 “아베 정권의 대응 방식에 유감”이라면서 “이는 인권의 문제이지 외교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한국 내에서 일제 불매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과 관련해서는 “‘주전장’은 일본 영화가 아니니 보이콧하지 말아 달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미키 감독은 “위안부 문제는 사회가 여성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부정하고 지워내려 했는지, 나아가 그들을 어떻게 성적 대상화했는지를 보여주는 세계적 상징”이라고 정의했다. 한국 관객들에게는 “흥미진진하면서도 많은 정보를 얻어갈 수 있는 영화이니 모쪼록 열린 마음으로 봐주시라”고 부탁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