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17일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를 비판하는 외신 간담회를 열고 본격적인 국제 여론전에 나섰다. 일본과의 직접 협의가 꽉 막힌 상태에서 국제사회에 일본 조치의 부당성을 알리는 한편, 이를 통해 일본에 대화를 촉구하려는 조치로 해석된다. 일본 정부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제3국 중재위원회’를 설치하자며 제시한 답변 시한이 18일로 다가왔지만, 청와대는 이미 수용불가 입장을 밝혔다. 일본 정부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우호국가)에서 제외할 것을 예고하는 등 추가 보복 조치를 검토하고 있어 이번 사태가 또 한 차례 중대 고비를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외신 상대 기자간담회를 열고 일본 정부의 조치가 세계무역기구(WTO)의 규범과 자유무역 정신을 정면으로 위반했다는 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정부는 우선 일본의 조치가 전 세계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정부 관계자는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로 인한 결과는 애플, 아마존, 델, 소니, 그리고 세계 수십억 명의 소비자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일본 측의 규제 철회를 촉구했다. 그러면서 “반도체가 한국 수출의 약 25%를 차지하고, 삼성전자가 한국 주식 시장의 21%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반도체산업을 수출 규제 대상으로 삼은 점은 특히 실망스럽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이날 간담회에서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당시 “자유롭고 개방적인 경제는 세계 평화와 번영의 토대”라고 발언했던 점, 일본이 2010년 중국의 희토류 수출 차단 당시 중국을 향해 WTO 규정 위반이라고 주장했던 사례 등을 제시했다. 일본이 자신의 주장을 뒤집고 모순에 빠져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은 G20의 주최국이자 자유무역의 후원자로서 자유무역을 지키겠다고 세계에 약속했다. 또 일본은 자유무역의 가장 큰 수혜국 중 하나”라며 “일본은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하며, 지킬 것으로 믿는다. 규제 조치를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일본이 수출 규제 조치의 근거조차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 점도 지적했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은 처음에는 신뢰 훼손을 근거로 꼽았으나 이후 명백한 증거도 없이 북한에 대한 불법 물자 유출을 이유로 내세웠다”고 말했다. 특히 일본이 문제 삼은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서도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이 강제노동에 관한 인권 침해를 다루지 않았다’는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거나 버릴 수 없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그러면서도 대화와 협력을 촉구했다. 정부 관계자는 “한국과 일본은 기술과 혁신을 통해 동북아시아 지역을 다음 단계로 발전시킬 수 있다”며 “한·일 간 협력 증진은 자연스럽게 중국이 참여하는 3자 간 협력의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했다. 이날 간담회는 한국 정부 입장을 대외적으로 알리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긴급히 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일본이 ‘제3국 중재위원회’ 응답 시한으로 제시한 18일 이후 이번 수출 규제 갈등은 다시 한 번 변곡점을 맞을 전망이다. 일본이 ‘데드라인’으로 제시한 18일엔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 회동이 있다. 일본의 보복성 조치에 대한 초당적이고 범정부적인 대응 방안이 합의문으로 발표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