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수출 규제에 이어 ‘화이트리스트 국가(백색국가)’ 배제를 경고하면서 ‘금융보복’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금융 분야를 표적으로 ‘돈줄 말리기’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 당국은 신중하면서도 확고하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분석한다. 최악의 경우 금융보복이 실현돼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그 이유로 ①대체 가능성, ②낮은 의존도, ③제한적 효과를 든다.
금융위원회 고위관계자는 17일 일본의 금융보복 가능성에 대해 “그런 경우는 한·일 사이에 ‘(경제) 전면전’이 벌어지는 상황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과도한 우려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시장 전문가들과 (향후 상황에 대해) 점검해 봤는데, 금융 분야에 대한 일본의 보복이나 이에 따른 피해 우려는 낮은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전면전이 벌어지면 한국뿐 아니라 일본도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면전 상황이 아니더라도 일본의 금융보복 가능성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우선 금융자금의 특성상 대체가 충분히 가능하다. 지난 16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김정훈 의원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일본의 단기대출 만기 연장 거부로 위기가 악화된 경험을 고려할 때 금융보복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금융위 설명은 이렇다. “97년 상황과 지금은 다르다. 만약 당시처럼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영국 등 다른 나라들도 대출 만기 연장을 거부한다면 영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단독 행동은 영향이 미미할 것이다. 금융자금이라는 게 100% 대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금융보복 자체의 효과가 제한적이다. 일본 자금이 빠져나간 자리를 미국이나 중국, 영국 등의 자금으로 바꿀 수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외화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은 5월 말 기준 일반은행 110.7%, 특수은행 97.7%에 이른다. 규제비율인 80%를 웃도는 수준이다. 외화 LCR은 금융회사의 외환건전성을 측정하는 지표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지난 5월 말 현재 4020억 달러로 세계 9위다.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 때 외환보유액(2397억 달러)보다 1623억 달러 늘었다. 금융시장 건전성이 높고, 외환보유액이 탄탄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일본 자금을 다른 나라 자금으로 돌릴 수 있는 것이다.
일본에 대한 금융의존도 또한 낮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일본에 대한 대외자산’은 389억 달러(전체의 3.5%)다. ‘일본으로부터의 부채’는 833억 달러(전체의 7.5%) 정도다. 전체 대외자산과 부채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은 것이다.
한은도 비슷한 진단을 내린다. 한은 고위관계자는 “원론적으로 금융보복을 우려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실행이 어려울 것”이라며 “일본계 자금의 동향을 계속 보고 있으나 현재로선 채권자금 등 유출이라든가 이상 조짐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일본 자금의 금액 규모는 무시할 수 없다. 한국에 진출한 외국계은행 38곳(16개국)의 총여신은 98조86억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일본계 은행의 한국지점 여신은 24조6900억원이다. 외국계 여신액의 25.2%를 차지한다. 중국(32조9000억원·33.6%)에 이어 두 번째다. 특히 일본계인 미즈호은행의 여신은 11조7000억원으로 국내 영업 중인 외국계은행 지점 가운데 가장 많다. 금융위 관계자는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체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재찬 강창욱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