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타다 등 택시와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업체에 사업허가권을 주되 ‘사회적 책임’을 무겁게 지우는 ‘상생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플랫폼 업체들이 출자한 기여금으로 공적기금을 만들고, 기금에서 택시 면허를 사들인 후 플랫폼 업체에 적정하게 분배하는 방식이다. 택시를 줄이는 만큼만 신규 서비스 차량이 움직이도록 해 ‘공급과잉’을 막겠다는 포석이다. ‘플랫폼 차량 확대 욕구’와 ‘택시 감차 필요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플랫폼 사업을 할 수 있는 ‘진입장벽’이 높아졌다. 택시 종사자격을 갖춘 이들만 플랫폼 차량을 운전할 수 있도록 했다. 렌터카를 활용한 서비스 제공에는 빗장을 풀지 않았다. 타다는 승합차를 직접 구매해야만 합법적으로 영업할 수 있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상생안이 모빌리티 시장을 자칫 대기업 위주로 쏠리게 만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신규 모빌리티 사업을 희망하는 스타트업 등 혁신기업의 성장을 막는 ‘문턱’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토교통부는 17일 관계부처 장관급 회의 및 당정협의를 거쳐 ‘혁신성장과 상생발전을 위한 택시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했다. 지난 3월 택시업계와 플랫폼 업체 간 사회적 대타협 때 만들어진 ‘누구나 제도적 틀 안에서 공정하게 경쟁해야 한다’는 합의 내용을 반영했다.
핵심은 플랫폼 서비스의 ‘제도화’다. 타다와 같은 플랫폼 업체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여 택시 업계와의 충돌을 방지하는 것이다. 플랫폼 업체들이 기존 택시 업계의 몫을 차지하는 대신 이를 택시 업계에 환원하는 장치를 마련했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플랫폼 업체가 서비스 종류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3가지 안을 만들었다. 첫 번째는 택시를 줄이는 양만큼만 플랫폼 업체의 영업을 허가하는 방식이다. 타다와 같이 유사택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이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을 것으로 보인다.
플랫폼 업체는 기본적으로 영업차량 대수만큼 택시면허를 보유해야 한다. 플랫폼 업체들이 기여금을 내 만든 공적기금이 택시면허를 사들인다. 이후 플랫폼 업체의 사업계획에 따라 적정한 차량 운영대수를 확정해 보유한 택시면허를 분배한다. 사실상 정부가 서비스 공급을 조절하는 ‘허가제’와 가깝다. 국토부는 매년 약 900대의 택시를 감차할 계획이다. 매년 약 900개 미만의 플랫폼 허가권이 나오는 셈이다.
일정 수준의 ‘장벽’도 설치했다. 안전 규정과 보험을 갖추고 소비자 개인정보를 관리하는 별도의 장치를 마련해야만 운송사업을 허가해 준다. 플랫폼 차량 기사는 일반 택시기사 자격증을 보유해야 한다. 성범죄·마약·음주운전 경력자는 채용할 수 없다.
두 번째는 법인·개인택시가 쉽게 가맹사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면허대수 기준을 완화하는 방안이다. 택시와 플랫폼 업체가 결합해 ‘웨이고’ 같은 브랜드 택시로 성장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세 번째는 카카오T처럼 승객과 택시를 연결하는 중개 애플리케이션 플랫폼 사업의 제도화다. 규제 샌드박스 등을 통해 검증된 사업도 기존 제도에 반영할 예정이다. 김경욱 국토부 2차관은 “다양한 혁신이 시도돼 국민 편익이 높아질 것”이라며 “기존 택시와 플랫폼 서비스도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상생안의 밑바닥에는 ‘택시 줄이기’라는 목표도 깔려 있다. 신규 모빌리티 서비스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도로 위에는 약 25만대의 택시가 달리고 있다. 이에 따라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기존 택시 감차 사업과 플랫폼 업체를 통한 감차를 동시해 진행하는 ‘투트랙 전략’을 펼치기로 했다.
기존 감차 사업에선 면허 1개에 약 1300만원을 주고 지자체가 사들인다. 대부분 법인택시 면허다. 개인택시 면허의 시세(6000만~7000만원)와 지자체 재정 여건이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공적기금이 시세에 따라 개인택시 면허를 주로 사들일 예정이기 때문에 감차가 효율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판단한다.
정부는 당초 나랏돈을 직접 투입해 택시면허를 사들인 뒤 플랫폼 업체에 분배하려고 했다. 플랫폼 업체로부터는 약 40만원의 임대료(기여금)를 받아 재정을 보전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혈세 낭비 논란이 불거지자 플랫폼 업체가 기여금을 내고, 그 기여금으로 택시면허를 사는 우회로를 선택했다. 구체적 기금 운용방식은 추가 연구용역을 거쳐 확정할 방침이다. 김 차관은 “정부 재정은 투입되지 않는다. 기여금을 관리할 관리기구의 설립비용 등만 초기에 정부가 지원한다. 실제 택시면허 매입 비용은 관리기구가 자산유동화증권(ABS) 형태로 금융시장에서 조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모빌리티 업계에서는 전환점이라고 평가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불법이라는 인식 때문에 투자자도 불안해했다. 정부가 법의 테두리를 만들어줘 투자자와 업체들도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선 과도하게 택시 업계를 보호하는 대책이라고 불만을 제기한다. 렌터카를 이용한 모빌리티 서비스가 허용될 것을 기대했지만 이번 방안에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다 운영사 VCNC의 박재욱 대표는 “기존 택시산업을 근간으로 대책을 마련한 까닭에 새로운 산업에 대한 진입장벽은 더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향후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상생안이 효력을 발휘하려면 우선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최대한 빠르게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고 하위 법령도 개정할 계획이다. 기여금 관리기구의 운영주체와 조직 규모를 정하고, 법적인 권한을 부여하는 과정도 거쳐야 한다. 실제 택시 감차 계획과 연계해 플랫폼 업체 면허 분배 시기도 조율해야 한다.
무엇보다 개인택시 면허 가격의 ‘적정선’도 그어야 한다. 관리기구는 ‘시세’에 따라 택시면허를 매입할 계획인데, 면허 가격이 급등하면 플랫폼 업체의 부담도 그만큼 커진다. 한때 서울의 택시 면허가격은 1억원에 육박하기도 했다. 김상도 국토부 종합교통정책관은 “면허 가격이 과도하게 오르지 않는 장치를 별도로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전성필 전슬기 기자, 김성훈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