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매개로 이어온 미국과 터키의 동맹 관계가 위기로 치닫고 있다. 터키가 러시아 방공미사일 S-400 도입을 굽히지 않자 미국은 F-35 스텔스 전투기 판매 철회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과 터키 사이가 틀어질 경우 터키와 다른 나토 회원국과의 관계 역시 함께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터키는 F-35 100여대를 주문했고 더 구매할 계획도 갖고 있다”면서 “하지만 그들은 러시아에서 미사일 체계를 구입했기 때문에 비행기 구입이 금지됐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 “(F-35 제작사 록히드마틴이)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F-35에) 많은 일자리가 달려 있었다”고 부연했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 지명자도 훌루시 아카르 터키 국방장관에게 “당신들은 S-400과 F-35 둘 중 하나만 가질 수 있다. 둘 다 갖는 건 안 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이날 상원 청문회에서 밝혔다. 에스퍼 지명자는 터키가 S-400 반입 사실을 공개한 직후 아카르 장관과 전화통화를 한 바 있다.
S-400은 러시아의 최첨단 지대공 미사일로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에 비견된다. 터키는 S-400 후속기종인 S-500 개발에 참여하려는 의향도 있다. 이에 앞서 터키는 이미 미국으로부터 F-35 전투기 100여대를 도입하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미국은 F-35와 S-400을 함께 운용하면 러시아에 F-35 관련 민감 정보가 넘어갈 것이라고 반발했다. 하지만 터키는 아랑곳 않고 지난 12일부터 S-400을 자국 내로 반입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S-400을 둘러싼 논란은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터키에 지나치게 까다로운 패트리엇 판매 조건을 제시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터키는 당초 미국산 패트리엇 미사일 도입하려 했지만 불발되자 대체품으로 S-400 도입을 추진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터키가 S-400 구매를 단념토록 패트리엇 미사일을 판매하겠다고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구매 절차가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됐을뿐더러 기술이전과 가격 등 조건도 러시아 측이 훨씬 낫다는 이유에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터키와 아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솔직히 말해 지금 상황이 아주 복잡하다”며 “터키는 방위를 위해 패트리엇 미사일이 필요했지만 오바마 행정부가 팔지 않았다. 어떤 조건에서도 팔지 않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터키가 미국산만큼 훌륭하진 않지만 비슷한 수준의 러시아 미사일을 사겠다고 하자마자 달려와 ‘좋다. 패트리엇 미사일을 팔겠다’고 한 꼴”이라고 말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개인적 친분을 바탕으로 S-400 논란을 원만히 풀려고 했다. 하지만 미국 조야(朝野)에서는 터키가 F-35와 S-400을 동시에 갖게 해선 안 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어서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도 F-35 금수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터키는 자국 내 시설에서 F-35 일부 부품을 생산해 납품하고 있지만 이 역시 취소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미국으로서는 터키를 지나치게 압박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시리아 주둔 미군을 철수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터키의 협조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